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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창희 Apr 30. 2020

미디어라는 형식의 변화가 갖는 의미

닐 포스트먼. 『죽도록 즐기기』.

근대 사회로의 이행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 중 하나는 대중 매체의 발달이다. 교통과 통신 체계 발전은 사회의 지리적 범위를 효율적으로 확장시켜 주었고, 정보 전달 범위를 넓혔다. 양차 대전 이후 비약적으로 발전한 통신 기술로 인해 음성 뿐 아니라 영상을 싫어 보내는 것이 가능해 졌고, 이는 텔레비전의 시대를 여기는 계기가 된다.       


어느 시기에나 그 시대를 주도하는 매체가 있다. 매체 수용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20세기 중후반부터 지금까지 텔레비전이 주도하는 세계에서 살고 있다. 현재는 동영상 이용 환경이 텔레비전 주도에서 인터넷을 통한 스트리밍 위주로 전환되는 과도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가정 내에서 이루어지는 텔레비전을 통한 동영상 소비가 가지는 사회적 영향력은 대단하다. 닐 포스트먼의 관점에서 보자면 동영상이 가지는 영향력은 오히려 압도적으로 커지고 있다.      


『죽도록 즐기기』는 텔레비전으로 인해 이미지가 주도하는 매체 환경에 대한 닐 포스트먼의 비판적인 관점이 담겨 있는 책이다. 포스트먼은 인쇄 매체가 주도하는 시대에 합리적인 토론이 가능했다면, 텔레비전이 주도하는 1980년대 미국에서 매체 소비는 오직 오락적 차원에서만 이루어지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 책의 제목이 ‘죽도록 즐기기’인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포스트먼은 전반적으로 미래에 전개될 문화 소비에 대해 부정적인 관점을 취하면서 여기에 대해 오웰식 모델(『1984』)과 헉슬리식 모델(『멋진 신세계』)로 나누어 접근한다. “문화적 풍조가 황폐화되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문화가 감옥이 되는 오웰식이다. 두 번째는 문화가 스트립쇼와 같이 저속해지는 헉슬리식이다(232쪽).” 오웰이 지적한 빅 브라더의 등장으로 인해 나타나는 문제와 헉슬리가 지적한 것처럼 선정적으로 매체를 소비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문제는 지금도 그렇고 미래에도 그렇고 계속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다. 제4차 산업혁명과 관련하여 핵심적인 동력으로 평가 받고 있는 데이터의 활용은 빅 브라더가 출현할 위험성을 안고 있다. 언제 어디서든 매체를 소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서 자극적인 내용의 콘텐츠가 늘어나고 있으며, 이러한 콘텐츠들이 가짜 뉴스를 유통시키는 배경이 되는 등 부작용을 낳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포스트먼은 매체를 소비하는 방식이 바뀌면 사고하는 방식도 바뀐다고 주장한다. “어떤 문화가 구두(口頭)에서 쓰기로, 그리고 인쇄를 거쳐 텔레비전으로 옮겨갈 때마다 진실에 대한 사고(思考)도 함께 변화한다(48쪽).” 이것 자체는 가치중립적인 사실로 보인다. 문제는 매체 형식의 변화가 초래하는 변화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은 매체의 형식 변화가 중요하다고 본 포스트먼이나 마셜 맥루언과 같은 학자가 역설하였던 20세기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내가 주장하는 바는, 새로운 주류매체가 사람들의 지적 능력을 편중시키고, 지성과 지혜에 대한 특정한 정의를 선호하도록 하고, 특정한 종류의 내용만을 요구하도록 조장하여(한마디로 진실-말하기의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내어) 공공담론을 변화시킨다는 사실에 한정되어 있다(51쪽).”


포스트먼의 주장대로 동영상 중심의 매체 환경이 공공 담론을 위축시킨 부분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동영상 없는 미디어 환경은 상상조차하기 어렵다. 또한, 코로나 사태로 인해 온라인을 통한 동영상 이용은 여가 뿐 아니라 교육과 업무의 영역에서도 필수적인 요소가 되어가고 있다. 논쟁적인 포스트먼의 주장에 손을 들어주건 이의를 제기하건 간에 매체 환경에서 동영상이 차지하는 중요성은 향후 더욱 높아질 것이다.         


『죽도록 즐기기』에서 포스트먼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매체 형식의 변화가 콘텐츠를 수용하는 감각을 바꾸어 놓은 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텔레비전에서 스트리밍으로 동영상 수용의 주도권이 넘어가느냐의 기로에 있는 지금 포스터먼의 다음과 같은 문장은 여전히 유효하다. “전자매체가 우리가 접하는 상징환경의 특성을 결정적이고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변화시켰다는 점에서 우리는 중대한 변화의 시점에 도달했다고 본다(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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