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형.『개인적 기억』.
조금 과장하여 말하면 ‘기억’은 인간의 모든 것이다. 인간은 자연발생적인 존재라기보다는 문화적인 존재에 가깝다. 인류는 자연적인 것을 기반으로 문화를 발명하고 그 지반 위에서 살아가는 존재다. 각자의 경험은 개인적인 것으로 보존되고 그 역할을 하는 것이 기억이다. 소설을 포함한 모든 서사의 기본적인 방법론은 기억을 재현하는 것이다. 기억은 문화적으로 구성된 존재인 인간이 의존하는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중요한 기억력이 탁월하다면? 아니 본인이 접한 모든 것을 기억한다면?『개인적 기억』은 보르헤스의 「기억의 천재 푸네스」에 등장하는 “사고를 당한 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능력을 갖게 된 남자”와 같은 증상을 가진 지율에 관한 얘기다. 지율은 태어날 때부터 탁월한 기억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다. 『개인적 기억』은 근미래를 다룬 판타지 장르라고 볼 수 있지만 지율의 기억과 관련된 설정만 제외하면 리얼리즘에 가깝기도 하다.
망각하고 싶은 결정적인 기억을 잃어버리는 테마는 존 치버의 「헤엄치는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헤엄치는 사람」에는 결정적인 파국을 기억하지 못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물론, 소설은 그가 일부러 기억을 파기해 버렸는지 혹은 자연스럽게 망각하고 싶은 기억이 잊혀 진 것인지를 말해 주지는 않는다. 「헤엄치는 사람」이 망각된 기억이 이미 폐허가 된 삶을 되돌릴 수 없게 만드는 소설이라면 『개인적 기억』은 결정적인 이별의 이유를 망각함으로써 삶을 다시 견딜 만 한 것으로 만드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지율은 부모의 어려운 경제적 사정을 생각하며 본인이 가진 능력을 활용해서 공부로 성공하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생긴 난독증은 지율의 삶을 전반적으로 혼란스럽게 만든다. 대학을 중퇴하고 레지던스에서 요리를 하며 일하던 지율은 은유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문제는 지율과 헤어지고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 어머니 상을 치룬 지율은 자신이 왜 은유와 헤어진 이유를 망각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율은 은유와 헤어지고 오브라는 약을 처방 받으면서 기억하는 능력이 나빠지면서 일반인과 비슷한 기억력을 가진 존재가 되어 간다. 하지만 오브의 약효는 기억을 완전히 무력화 시키는 것이 아니다. 즉, 오브를 먹었다고 기억이 완전히 망실되리라는 법은 없다는 것이다.
“은유가 가장 좋아하는 화제는 ‘기억’이었다(75쪽).”하지만 은유는 기억력이 좋지 않았고, 아니 지율의 입장에서 보면 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은유는 망각이 심한 자신의 특성을 싫어했지만 지율은 그런 은유에게 끌렸다. 이를테면 두 사람은 기억에 관해서는 정반대의 능력치를 가진 존재들이었던 것이다.
지율은 끝내 은유와 헤어진 이유를 발견하는데 실패한다. 하지만 지율은 깨닫는다. 모든 것은 영원할 수 없고, 영원할 수 없으므로 모든 것을 기억하는 것도 때로는 삶에 있어 해로울 수 있다. “영원하지 않은 것들의 애틋함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119쪽).”원래 사라지게 되어 있던 것들을 긍정하는 망각은 때로 삶을 이어나가는 동력이 될 수도 있다. “한 시절이 그렇게 영원히 사라져가고 있었다. 사라졌는지도 몰랐던, 그러다 거짓말처럼 되살아난 어떤 시간들이 다시 한 번 천천히 빛을 잃어가는 중이었고, 그것은 원래 사라지게 되어 있던 것이었다(131쪽).” 그 망각을 통해 비티어 온 하루 치의 삶들이 모이는 것이 바로 삶일 수도 있다. “무너지지 않고 살아낸 하루 치의 현재가 차곡차곡 쌓여갔다(56쪽).”
우리가 부끄러움을 떨쳐 내지 못하는 이유가 망각하지 못하는 능력 때문이라면 어떤 일은 망각해야 하는 윤리가 될 수도 있다. “우리가 세계로부터 자꾸만 멀어지는 이유가 다름 아닌 부끄러움 때문이라는 건 슬픈 일이다(「작가의 말」, 137쪽).” 윤이형이 5년 전에 썼던 저 문장을 윤이형에게 돌려주고 싶다. 이제 그만 다시 오셔서 다시 써 주시라고. 나만 하는 생각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