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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창희 Jun 03. 2020

스트리밍 그리고 이용자

노창희. 『스트리밍 이후의 플랫폼』.

2019년 11월을 생각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아도 이상할 것은 없는 시기였다. 개인적으로 각자의 사연이 있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나에게 2019년 11월은 디즈니+와 애플TV+가 런칭한 시기로 각인되어 있다. 글로벌 사업자가 새로운 OTT 스트리밍 서비스를 출시한 것 자체가 그렇게 놀라운 사건일 리는 없다. 두 사업자의 스트리밍 시장 진입이 일종의 ‘사건’처럼 느껴졌던 것은 구독 기반 스트리밍 시장의 경쟁이 본격적으로 심화되는 전조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나에게 있었던 사연은 북저널리즘에서 2019년 11월에 글로벌 OTT 사업자 간 경쟁과 관련된 책 출간을 제안 받은 것이었다. 어리둥절하긴 했지만 출간 제안을 수락했다. OTT 관련 동향을 지속적으로 살펴보고는 있었지만 막상 출간 제안을 받고 관련된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하니 과연 2020년이 글로벌 스트리밍 경쟁에서 변곡점이 될 것만큼은 분명해 보였다. 2019년말에서 2020년 초까지 많은 매체에서 2020년이 ‘스트리밍 전쟁(streaming wars)’이 벌어지는 해가 될 것이라는 수사를 쏟아내고 있었다.  


80쪽 분량의 짧은 책이 나오기까지 많은 일이 벌어졌다. 디즈니+가 착실히 가입자를 늘려 가던 중에 기생충이 아카데미에서 4관왕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아카데미상에서 21개의 후보작을 낸 넷플릭스는 2개의 수상작을 배출하는데 그쳤지만 경쟁 플랫폼들의 진입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가입자를 늘려가며 구독 플랫폼 1위 자리를 수성했다. 그리고 코로나가 전세계를 휩쓸었다. 스트리밍 전쟁이 아니라 스트리밍의 시대라고 불러야 할만큼 스티리밍 이용자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모든 스트리밍 플랫폼이 순항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모바일 온리 전략을 택한 숏폼 플랫폼 퀴비는 기대에 크게 못미치는 성적표를 거두고 있다. 코로나가 광범위하게 확산되는 시기에 가입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넷플릭스와 디즈니+ 역시 콘텐츠 제작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콘텐츠 수급과 관련된 고민이 계속될 것이다. 스트리밍 서비스 이용량이 늘어남에 따라 폭증하고 있는 트래픽은 넷플릭스와 같은 스트리밍 사업자에게 이에 관한 사회적 책임을 지라는 부담으로 돌아오고 있다. 2019년 11월에 바라본 세계와 2020년 6월에 바라본 세계는 이토록 다르다. 이제 우리는 코로나 이후 스트리밍 서비스는 우리에게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져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내가 쓴 책에 관한 글이니 독후감이나 서평이라는 말을 쓸 수는 없을 것이다. 책에 못다 쓴 에필로그 정도라고 해야 맞을 글이다. 처음에 제안 받은 제목은 ‘OTT 플랫폼 전쟁의 서막’이었고, 내가 제안한 제목은 ‘OTT 생태계의 대전환’이었다. 수정과 수정을 거듭한 끝에 편집부에서 내게 제안한 제목이 ‘스트리밍 이후의 플랫폼’이었다. 몇 가지 제목을 두고 고민한 끝에 편집부의 제안을 받아 들였다. 지금이 스트리밍 서비스로 인해 미디어 시장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시기라면 그 이후의 플랫폼의 형태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필요하다는 정도로 나 스스로 수긍했다. 


‘전쟁’이라는 용어는 삭막하게 느껴지고 ‘대전환’이라는 단어는 다소 밋밋하게 느껴졌다. 내가 이 책을 통해 하고 싶은 얘기는 무엇이었을까? 결국 애초에 질문으로 돌아온다. 확실한 것은 미래의 미디어 생태계는 하나의 힘이 주도하기는 어려운 ‘장(field)’이라는 것이다. 사업자의 혁신, 정부의 조정, 이용자의 선택이 서로 간에 영향을 주는 협치의 생태계가 될 것이라는 것이 처음에 주어진 가설이었으며, 책을 출간하고 나서도 다시 검증해야 하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변화이다. 


책 출간을 앞두고 나니 덩그러니 남은 용어는 ‘스트리밍’과 ‘이용자’두 개다. 어느 시기든 그 시기를 주도하는 매체가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지금 방송이 주도하던 세상이 스트리밍이 주도하던 세상으로 바뀌어 가는 전환기에 놓여 있다. 이 전환기의 주인공은 이용자다. 이용자라는 존재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은 사업자 입장에서도 정부 입장에서도 이용자 자기 자신의 입장에서도 중요하다는 것이 내 입장에서 이견이 있기 어려운 주장이었다. 이용자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플랫폼 입장에서 이용자의 니즈는 가장 중요한 탐구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이용자의 복지를 정책의 최우선 목표로 삼아야 하는 정부 입장에서는 지금의 스트리밍 환경이 이용자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수많은 선택지가 놓여져 있는 상황은 이용자에게 축복이자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선택 자체가 많은 인지적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를 찾고 내가 좋아하는 콘텐츠를 선택하고 소비하는 일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일이다. 내 권리를 지키기 위한 노력은 스트리밍 환경에서 갈수록 중요해 질 것이다. 


이 얇은 책을 통해 다룰 수 있었던 얘기는 당연히 제한적이었다. 여전히 머릿속으로 정리되지 않은 이슈들도 많다. 못다 한 얘기를 어떤 형식으로 어떻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음을 기약하는 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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