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훈육을 통해 완성된 아름다운 정원

강화길, 「가원」, 『화이트 호스』.

by 노창희

「가원」은 삼대에 걸친 모녀의 이야기다. 중요한 두 축은 연정과 외할머니다. 연정의 엄마는 이혼 후 외할머니의 보호를 받는 처지가 되고, 다섯 살 때 외할아버지 박윤보와 외할머니의 집으로 온 연정은 자연스럽게 엄마 곁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하지만 외할머니는 연정을 번번이 엄마의 품에서 떼어놓는다. 엄마 곁에 잠들었던 연정은 일어나면 박윤보 옆에 있는 방식으로 유년기의 밤과 아침을 맞는다.


박윤보는 도내에서 손꼽히던 서예가 석당의 셋째 아들이었지만 아버지의 바람과는 달리 음악을 했다. 박윤보는 평생 제대로 돈벌이를 한 적이 없다. 딸과 외손녀 그리고 박윤보까지 온전히 외할머니가 화장품 방문판매를 하면서 책임진다. 외할머니는 자신은 게으른 사람이 아니라고 밥값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말을 달고 산다. “동그란 얼굴에 머리는 짧게 자르고 진한 화장을 한, 그러나 무서운 인상을 숨길 수 없으나 비쩍 마른 중년 여자(49쪽).”


아름다운 정원이라는 뜻을 가진 ‘가원(佳園)’은 석당의 집이다. 모두가 떠난 빈집을 박윤보가 관리하고 형제들은 그 대가로 박윤보에게 얼마간의 돈을 줬다. 그것이 박윤보의 유일한 수입이었다. 외할머니는 가원을 싫어 했지만 연정은 그곳에서 해방감을 느낀다. 박윤보는 가원에서 연정에게 도넛 모양의 담배 연기를 보여주고 연정은 그런 박윤보를 사랑했다. “박윤보는 내가 사랑한 유일한 남자였다(45쪽).”


외할머니는 연정을 유년기부터 몰아치고 연정은 치과의사가 되어 유년기에 살던 동네를 벗어난다. 외할머니가 연정에게 전교 1등을 유지하라고 몰아치던 시절 박윤보는 형제들부터 가원을 판 돈을 받고 외할머니와 어머니는 동네를 벗어나 훗날 실제로 집값이 크게 뛴 집을 살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박윤보는 그 돈을 투자했다가 사기를 당하고 연정의 학원 값까지 훔쳐서 증권가에서 낭패를 부리다가 교통사고를 당한다.

현재 시점에서 연정이 치과 개업을 앞둔 며칠 전 이제는 치매를 겪고 있던 외할머니가 실종된다. 외할머니를 찾아 나선 연정은 이제는 패가가 되어 있는 가원을 떠올린다. 외할머니는 자신이 싫어했던 그곳에 왜 다시 찾아간 것일까? 외할머니가 내내 강조했던 밥값을 한 사람이 된 연정은 여전히 외할머니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그 모든 걸 미리 알았다면 할머니를 이해했을까. 할머니가 이러는 건 모두 다 나를 위해서라고, 나만은 다른 삶을 살았으면 해서 그런 거라고. 나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그러니까 당신 자식의 발목을 잡은 새끼여서 혹독하게 구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내가 부디 다른 삶을 살았으면 하는 그런 간절한 마음 때문에 이러는 거라고(63쪽).”


연정은 알고 있다. 자신이 ‘동네’로 상징되는 어려운 시절을 통과하고 지금에 도달할 수 있었던 동력이 바로 외할머니의 끔찍한 훈육 때문이었음을. 하지만 연정은 끝내 박윤보를 미워하기 어렵고 박윤보와 닮은 남자들을 만났다가 헤어지기를 반복한다. “박윤보와 같은 남자들을 만나고 얼마든지 그들을 떠나고 다시 만나고 잊었다. 그런 사람으로 자랐다(72쪽).”


연정은 박윤보를 미워하지 못하는 자신을 스스로 이해하지 못한다. “그 무책임한 남자를 미워하는 것이, 이 미련한 여자를 사랑하는 것보다 힘든 것일까(73쪽).”「가원」은 외할머니를 이해하는 연대의 서사임과 동시에 외할머니의 훈육방식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잔여의 서사이기도 하다. 선대의 여성이 후속 세대의 성장을 위해 악역을 맡아야 하는 것은 과연 올바른 선택인가? 분명한 것은 연정에게 아름다운 정원은 박윤보가 아니라 외할머니라는 것이다. 연정이 느끼는 불편함은 이러한 관계에서 매끈한 해결은 있기 어렵다는 것을 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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