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고 높고 쓸쓸한 상실의 문장들

김연수.『일곱 해의 마지막』.

by 노창희

얼마 전 오랜 친구 둘을 만났다. 한 명은 얼마 전에 회사를 그만둔 상태였고, 다른 한 명도 지금 다니는 직장에 대한 회의와 앞으로의 삶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나 역시 앞으로 어찌 살아야 할지에 대해 막막한 요즈음이었으므로 앞에 놓여 있는 술잔만 묵묵히 비웠다. 삶이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왜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가? 인간은 이 질문들에 답하지 못하더라도 삶을 살아가는 방식으로 그 질문을 되돌려 줄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이제 40대에 접어든 친구들과 나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인생이 던지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 말로든 삶 그 자체로든.


“인생의 질문이란 대답하지 않으면 그만인 그런 질문이 아니었다. 원하는 게 있다면 적극적으로 대답해야 했다. 어쩔 수 없이 대답하지 못한다고 해도 그것 역시 하나의 선택이었다. 세상에 태어날 때 그랬던 것처럼,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그러므로 그건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고 말해도 소용없었다. 그리고 선택한 것에 대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져야만 했다. 설사 그게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일지라도(38쪽).”


『일곱 해의 마지막』은 시를 쓰지 못하던 백석이 시를 다시 쓰기 시작한 일곱 해를 중심으로 백석의 삶을 다룬다. 이 소설은 백석 삶에 대한 총체적인 조망도는 아니다. 자유롭게 시 쓰는 것이 불가능했던 북한에서 기행(백석의 본명은 백기행이다)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받아 들이는지 아니 보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자신의 실패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관한 얘기다.


동시에 소재로 쓰이는 동물까지 개입하던 북한에서 자유로운 창작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소련의 문인 벨라에게 줬던 노트를 발각당한 기행은 더욱 궁지에 몰린다. 가뜩이나 자아가 많다고 비판 당했던 그였다. “비판자들의 표현에 따르면, ‘자아’가 너무 많았다. 그 자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그들은 말했다(54쪽).” 벨라에게 줬던 노트에 담긴 자신의 진짜 시를 쓰지 못하던 기행은 당의 요구에 온전히 수긍하지 못하다가 결국 협동조합으로 내몰린다.


백석은 마지막으로 시를 썼던 63년에서 33년을 더 살고 96년에 죽는다. 그와 동갑이던 김일성보다도 2년을 더 살았던 것이다. 그 침묵의 시간을 후세의 우리는 알 수 없다. 다만, 몹시도 괴로웠을 것이라고 인생에서 잃어버린 것들 때문에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짐작해 보는 수밖에 없다. “마흔 살이 지나면서부터 만사가 허무해졌고, 술이 늘었다. 따져보니 인생은 전반적으로 실패였다. 원했던 삶이 있었는데, 모두 이루지 못했다(83쪽).”

김연수는 이 소설에서 백석이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것들을 조금이라도 보상해 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현실에서 실현되지 못한 일들은 소설이 된다고 믿고 있었다(「작가의 말」, 245쪽).” 소설은 르포가 아니므로 작가가 실현하고 싶은 사건이 있다면 이야기로 만들면 되겠으나 정확한 문장을 통해 소설적 진실을 전해야 하는 작가에게 허용된 몫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그저 사랑을 잃고 방황하는 젊은 기행에게는 덕원신학교 학생들의 연주를 들려주고 삼수로 쫓겨간 늙은 기행에게는 상주의 초등학생이 쓴 동시를 읽게 했을 뿐. 그러므로 이것은 백석이 살아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이야기이자, 죽는 순간까지도 그가 마음속에서 놓지 않았던 소망에 대한 이야기다. 백석은 1996년에 세상을 떠났고, 이제 나는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이 된 그를 본다(「작가의 말」, 246쪽).”


해방공간에 놓여 본인이 쓰고 싶은 시를 쓰지 못했던 기행처럼 우리는 모두 각자의 한계 속에서 살아간다. 선택을 강요당했던 해방공간에서의 선택은 많은 이들에게 큰 상처를 입혔다. 하지만 그 선택에 옳고 그름을 따져보는 것은 부질없는 일일 것이다. “당연히 서로의 주장은 엇갈리고 지향점은 다르고, 문제는 제각각이다. 그렇게 세계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이고, 현실은 그 무수한 세계가 결합된 곳이다. 거기에는 아름다운 세계가 있고, 또 추악한 세계가 있다. 협잡이 판치는 세계가 있고, 단아하고 성실한 세계가 있다. 어떤 세계는 지옥에, 또 어떤 세계는 천국에 가깝다. 이 모든 세계가 모여 다채롭고도 영롱하게 반짝이는 빛을 발하면 이 모든 세계가 모여 다채롭고도 영롱하게 반짝이는 빛을 발하면 그것이 바로 완전한 현실이 되는 것이다(190-191쪽).” 인간은 각자의 한계 속에서 어쩔 수 없는 상실을 겪으며 살아간다. 이 처연한 소설이 우리에게 주는 위안이 있다면 그것은 한계로 인해 발생하는 상실이 나 혼자만 겪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다는 깨달음이다. 20대 초반 나에게 청춘의 문장들을 들려주었던 작가는 이제 40살이 된 나에게 “외롭고 높고 쓸쓸(백석, 「흰 바람벽이 있어」)”한 문장들을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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