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의미’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

김연수.『사월의 미, 칠월의 솔』.

by 노창희

11월 셋째 주는 유난히 되는 일이 없었다. 유독 나에게 일이 몰렸고 내가 통제하기 어려운 변수 때문에 일을 그르치는 사태가 이어졌다. 목요일 저녁과 금요일 아침. 회사의 PC가 악성코드로 인해 좀비가 되었을 때 그리고 그와 관련된 일련의 일들 때문에 나의 정신 상태는 완전히 붕괴 되었다. 일이고 뭐고... 그 날 저녁 나는 6시가 되자마자 회사에서 도망쳐 나와 독한 술을 먹고 뻗어 버렸다. 그리고 다음 날 토요일 아침 친구에게 카톡으로 오늘 만나자는 연락이 왔을 때 나가기 어려울 것 같다고 얘기했다. 생각해 둔 일정도 있었거니와 누군가와 만날 상태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 빼고 보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오랜만에 지방에서 올라오는 친구의 다음과 같은 말은 모임을 거부하기 힘들게 만들었다. “잠깐 얼굴이라도 보면 안 될까?” 내가 뭐 그리 비싼 인간이라고. 기분도 꿀꿀한데 저녁에 간만에 녀석들을 만나 술이나 한 잔 하지 뭐. 나는 마음을 바꿔 먹었다. 그리고 와이프와 예정되어 있던 결혼식을 가면서『사월의 미, 칠월의 솔』을 챙겨 넣었다.


결혼식이 끝나고 약속 시간이었던 저녁 9시 전까지는 대략 8시간 정도가 비어 있었고, 나는 오랜만에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소설을 읽을 수 있었다. 편안했던 이유는 무엇보다 김연수의 소설이었고, 사람들의 추억에 관한 이야기였으며, 지금은 존재하지 않은 사람들과 지금 여기에 있는 이들이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위로가 되었던 것은 김연수의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 20대 초반이었던 내가 30대 중반이 되었던 것처럼 당시 30대 초반이었던 김연수가 40대 초반이 되었다는 사실. 즉, 작가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나이가 들고 그에 따라 그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내게 말을 걸어온다는 사실이었다. 작가가 나이 먹어가는 사실에 안도하는 내가 치사해 보여도 할 수 없다. 그 사실이 내게 ‘위로’를 건네는 것은 사실이니까.


이 소설집은 나와 동갑내기로 보이는 주인공이 헤어진 여자 친구에게 전화를 받는 장면에서 시작해서 불면증에 시달리는 주인공이 산책을 통해 병을 극복해 낸 이와 산책을 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그 외에도 사연은 다양하다. 정신지체를 가지고 있는 아이로 인해 괴로워하는 가족, 죽은 옛 여인의 아들과 만나는 영화배우, 죽은 어머니의 노랫소리를 찾아 터널을 헤매는 남매, 절필한 원로 선배의 마지막 글을 받아보는 투병중인 작가, 죽은 아버지와 이혼한 어머니와 해후하는 아들, 우연히 만난 선배에게 기이한 얘기를 듣게 되는 작가, 자기가 만든 바이올린을 우연한 계기를 통해 다시 얻게 되면서 선물했던 애인을 떠올리는 바이올린 제작자까지.


김연수는 이 다양한 사연을 통해 시종일관 타인과의 관계를 맺는 것은 괴롭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있었던 추억을 되새김질하고 그 추억을 통해 다시 관계 맺을 것을 권한다. 설령, 그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지라도. 그리하여 인생을 한 번만 더 살 수는 없을 지라도 지금 곁에 존재하는 사람들과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과 이야기는 할 수 있으니까. 결국 이야기를 건네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관계이고 존재의 이유이니까. 사회생활에 지칠 대로 지친 나에게 10년 터울의 인생 선배가 들려주는 그러한 이야기들은 아주 시니컬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작은 위로가 되었다. “사람들과 함께한 시간들은 결코 헛되지 않다.”라는 것을 그냥 듣는 것과 소설을 통해 읽는 것은 또 다르니까. 어쩌면 그래서 소설을 읽는 것이니까.


책을 다 보고나니 8시가 좀 넘은 무렵이 되었다. 강남 교보문고 근처 커피숍에서 그 책을 내리읽은 나는 와이프를 집으로 보내고 약속 장소인 양재역까지 천천히 걸었다. 그리고 이어폰을 꽂고 김연수가 나왔던 팟캐스트를 다시 들었다. 그리고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이 예전 고등학교 때 등굣길이었다는 것을 떠올려 냈다. 그리고 새삼스럽게 곧 만날 친구들이 몹시도 보고파졌다. 내년이면 34살이 되는 친구도 있고, 35살이 되는 친구도 있다. 각자 모두 다른 이유로 힘들 것이고. 다른 이유로 기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희노애락을 온전히 나눌 수는 없겠지. 하지만 할 이야기는 많을 것이다. 함께 시간을 보낸 사람들에게는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저널로 생겨나는 법이니까. 김연수 형님께서 그리 말씀 하셨으니까. 가차 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 ‘의미’를 찾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의미’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을 테니까.


녀석들을 만나기 전에 나는 잠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시 인생을 살 수는 없지만 지금의 인생을 잠시 멈출 수 있지는 않을까. 맹목적으로 출퇴근 하고, 술 먹고 잊는 그러한 삶이 아니라, 과거를 잠시 돌아보는 삶. 지금 내 주변에 존재하는 사람들과.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 지금은 세상에 없는 아버지에 대해 생각해 보는 삶. 그런 삶의 정지 버튼을 누를 수 있는 기회는 아직 내게 남아 있으니까. 적어도 이런 생각을 해 볼 수는 있으니까. 나는 그 주 나에게 있었던 일들에 대해 친구들에게 장황하게 얘기했다. 아무도 대책은 없었다. 그래도 뭐 어떤가. 할 얘기가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닌가. 친구들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나는 내일 아침에는 무작정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로 했다. 그게 뭘까? 독후감을 쓰자. 아니 일기를 쓰자. 아니 독후감도 쓰고 일기도 쓰자. 그래서 뭘 어쩌려고? 언젠가 누군가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생각해 보자. 같이 나눌 수 있는 추억을 만들자. 그러다 보면 언젠가 야즈드의 불빛을 만날 수 있지 않겠는가. 만날 수 없다면 또 뭐 어떤가. 그 불빛을 만날 때까지 걸으면서 어제 내게 있었던 일들을, 혹은 더욱 과거의 얘기를 같이 하면서 야즈드의 불빛이 나올 때까지 걷기만 하면 된다. 어차피 인생은 계속 오르막길이니까. 그렇게 버티면 된다. 34살도 여전히 오르막일 테니.


출처: 이 글은 2013년 12월 31일에 <문학동네 채널1: 문학이야기>에 소개되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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