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미, 「스노우맨」, 『당분간 인간』.
코로나로 인해 많은 이들의 일상이 뒤틀리고 있다. 뒤틀린 정도면 다행이고, 일자리를 잃고 있는 사람들도 나오고 있다. 불행히도 재앙 앞에서도 인간은 평등하지 않다. 재앙에 민감한 영향을 받는 이들은 사회적 사다리의 아래쪽에 위치해 있는 사람들이다. 「스노우맨」의 주인공은 별다른 호칭 없이 ‘남자’라고 지칭된다. 이 호칭에서 독자는 「스노우맨」이 다루는 인물 군상이 기능적으로 대상화되어 있는 현대의 노동자라는 것을 예감하게 된다.
「스노우맨」에서 주어진 재난은 폭설이다. “새해 첫날 저녁, 고요하게 나부끼는 눈송이는 꽤 괜찮은 이벤트처럼 보였다(9쪽).”「스노우맨」은 눈 내리는 새해 첫날의 정경으로 시작된다. 겨울에 내리는 눈은 낭만적일지는 몰라도 생활의 영역으로 내려오면 재앙이 될 수도 있다. 다른 날 보다 서둘러 출근길에 나선 남자는 눈 때문에 공동현관문이 열리지 않아 102호 남자에게 같이 치우면 출근할 때 도움이 되지 않겠냐며 도움을 청해 보지만 102호 남자에게 돌아온 대답은 자신은 31일부로 출근할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102호 남자에 대해 남자는 이기적인 그의 행동에 분노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안 됐다는 생각을 한다. 문제는 자신도 자칫 잘못하면 102호 남자처럼 될 수 있는 입장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만년 대리로 회사에서 평판도 좋지 않은 남자가 눈 때문에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자 육아에 전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아내는 안도감보다는 불안한 기색을 드러낸다. 몇 일째 출근을 못하고 있던 남자에게 드디어 회사에서 연락이 온다. 출근을 하지 않는 것은 남자와 유대리 뿐이라는 것이었다. 남자의 다음과 같은 바람은 처참히 무너진다. “지각이 거의 확실시되자 남자는 이 사태가 이 지역의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 상사가 납득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범지역적인 재앙이기를 진심으로 바랐다(12쪽).” 남자가 빌라가 아닌 제설 환경이 보다 좋은 아파트에서 살았다면? 상황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자는 이제 눈을 뚫고 회사에 출근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버렸다. “폭설이 이 도시가 아니라 남자의 인생에 쏟아져 내린 것 같았다(21쪽).”
삽으로 눈을 파고 회사에 출근을 하던 남자는 계속해서 울리는 핸드폰 소리를 듣게 되고 눈 속에 파묻혀 있는 사람을 발견하게 되는데 놀랍게도 그는 유대리였다. 유대리는 폭우가 쏟아지던 때에도 출근을 하기 위해 회사에서 밤을 세우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출근을 하기 위해 눈을 파다가 화석이 되어버린 것이다. “눈 속에서 화석이 된 사람은 집에도 없고 전화도 받지 않던 유대리였다(32쪽).”
전도유망하게 보였던 유대리 역시 재앙 앞에서는 눈을 뚫지 못해 출근하지 못한 남자와 다를 바 없는 존재였던 것이었다. “얼마 전까지 일상이었던 것들이 지금은 손이 닿지 않는 저 눈 밑에 파묻혀버렸다(30쪽).”「스노우맨」에서 다루고 있는 재앙은 지금의 우리가 겪고 있는 상황을 생각할 때 언제든 누구에게도 닥칠 수 있는 것이다. 재앙에 노출된 현대인에게 밝은 전망을 바라기는 너무도 어렵다. “시야가 구겨진 종이처럼 뭉개지고 있었다(3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