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린. 「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여름의 빌라』.
삶을 대하는 태도를 도식적으로 구분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매혹’과 ‘윤리’라는 구분으로 접근하는 것을 좋아한다. 물론, 이 두 가지 기준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삶이 소망하는 것과 그 소망이 좌절되는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매혹과 윤리라는 구분은 그것을 설명하는데 유용한 것만큼은 분명하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소망은 본인이 의식하고 있는 소망은 물론이고 의식하지 못하는 소망도 포함하는 것이다.
「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 는 그녀 부부가 ‘붉은 지붕의 집’을 보면서 언젠가는 저런 집에서 살고 싶다는 욕망을 피력하면서 시작한다. 이 부부가 누군가는 잔디를 깎고 누군가는 맥주와 고기를 사오면 좋겠다는 역할극을 하는 장면은 이 부부에게 무언가가 결여 되어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성형외과에서 일하고 있는 남편과 이제 둘째를 출산한 그녀 사이는 외형적으로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인다. 육아 비용과 아이들의 완벽한 돌봄을 위해 회사를 그만둔 그녀는 자신에게 결여되어 있는 무엇인지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그녀가 자신의 결여를 느끼는 계기가 발생한다. 대학교 때 단짝 친구였던 한나가 이탈리아에서 돌아와 레스토랑을 오픈하면서 무용을 하는 한나의 후배를 만난 것이 그것이다.
이미 유명한 무용수인 한나의 후배는 그녀를 보고 무용을 했냐고 묻는다. 무용을 했어도 “정말 좋았을 골격(148쪽)”을 가져서 물어봤다고 하고는 그녀에게 사과한다. 그녀가 그의 질문을 받고 당황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당황한 이유는 그의 질문을 무례하기 받아들였다기보다는 무용을 하고 싶었으나 중도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사연 때문이었다. “한나는 하고 싶은 일이 언제나 너무 많은 사람이었고, 그녀는 누군가 정해준 틀 안에서 무언가를 결정하는 것이 편한 스타일이었으므로 둘은 그 둘이 이룬 균형에 만족했다(143-144쪽).” 한나와의 관계에서도 드러나는 것처럼 그녀는 정해진 틀에서 벗어난 삶을 살아보지 못했고, 결혼 후에 둘째를 낳은 이후에는 육아와 돌봄에 완전히 매몰된다.
그녀는‘붉은 지붕의 집’을 부수는 작업을 하는 남성의 육체를 보고 한나 후배를 보고 느꼈던 매혹과 욕망을 다시 느낀다. “그녀는 기본적으로, 자신이 지금 누릴 수 없는 것에 대해 괴로워하기보다는 인생의 단계, 단계에 걸맞은 역할을 수용하는 것이 성숙한 태도라고 생각하는 편이었다(152쪽).”한나가 오프한 레스트랑 카페뮐러를 다녀온 이후 그녀는 자신이 성숙하다고 생각해 온 일상이라는 감옥에 갖혀 살아왔음을 깨닫는다. “그는 틀림없이 욕망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목숨을 걸어봤겠지? 불현듯 그녀는 자신이 지금껏 누구에게도 떼쓰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일찍 철이 든 척했지만 그녀의 삶은 그저 거대한 체념에 불과했음을(165쪽).”
한나의 후배가 티켓을 준 공연에 그녀는 가지 못한다. 남편이 갑작스러운 수술 일정이 잡혀 애들을 돌봐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녀의 견고한 일상은 그녀에게 족쇄가 된다. 하지만 그 어긋남을 남편은 눈치채지 못한다. “그렇게 말하자 형언할 수 없는 고통과 기쁨이 동시에 그녀 안에 차올랐다. 그 순간, 그들의 삶의 각도가 미세하게 어긋났지만 남편은 아무것도 알아챌 수 없었으므로 그저 첫째 아이가 내미는 컵을 받아 쥐었다(16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