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어진 삶과 선택한 삶 사이의 고독

줌파 라이히.『저지대』.

by 노창희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환경에서 삶을 시작한다.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가야 하는 존재에게 자신에게 주어진 삶이 수동적으로 주어진 것이라는 역설은 살면서 겪어내야 하는 시대와 구체적인 삶의 조건에 대해 끊임없이 회의하게 만든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대다수의 국가에서 혼란이 초래되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희생되었다. 어떤 이는 잘못된 시대를 혁명으로 바꾸고자 하였고 어떤 이는 자기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안위를 염려하는 삶을 살아간다.


15개월 차이의 형제 수바시와 우다얀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로 태어나고 자란다. 침착하고 책임감 강한 수바시와 충동적이고 급진적인 성향을 가진 우다얀은 한 인간이 가지고 있을 수 있는 서로 다른 양면 같이도 느껴진다. 변혁의 시기에 우다얀은 혁명을 택하고 수바시는 인도를 떠나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쪽을 선택한다. 누구의 선택이 옳고 누구의 선택이 그르다고 할 수는 없다. 자신보다 큰 존재감을 드러내 왔던 우다얀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있던 수바시는 자신이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떠난 것은 아닐까 고뇌하지만 자신에게 맞는 선택을 한 것이었을 뿐이다.


혁명의 물결에 휩쓸려 들어간 우다얀은 20대에 죽음을 맞이한다. 그는 죽음을 맞이하기 전에 가우리와 결혼을 했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우리는 우다얀의 아이를 갖게 된다. 동생의 죽음을 잘 수습해 주기를 바랐기 때문에 부모님은 수바시를 인도로 부른다. 우다얀이 생전에 보내줬던 사진에서부터 가우리에게 끌렸던 수바시는 그녀를 인도에서 탈출시켜 주고 우다얀의 자식을 자신이 보호하기 위해 가우리와 결혼해서 인도를 떠나는 선택을 하게 된다. 수바시의 이 선택은 부모님의 뜻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수바시는 자신의 이 주체적인 선택이 훗날 자신의 삶에 어떠한 형태로 돌아올지 전혀 예상하지 못한다.


철학을 공부하는 가우리는 기질적으로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한 사람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그가 온전히 혼자이기를 고집하는 사람이라는 말은 아니다. 당시 인도에서 받아들여 지기 힘든 여성의 유형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수바시는 미국에서 가우리가 자신의 뜻대로 공부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 준다. 그리고 딸인 벨라가 태어나고 수바시는 최선을 다해 벨라를 키운다. 수바시는 가우리에게 최선을 다하고 둘은 짧은 기간이지만 어느 정도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해 나간다. 하지만 벨라의 진짜 아빠가 아닌 수바시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은 가우리에게 너무도 힘든 일이었다. 이것은 가우리가 벨라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에도 방해요인으로 작용한다. 가우리가 벨라를 대하는 태도에 환멸을 느낀 수바시는 결혼은 유지하되 가우리와 거리를 두는 방향으로 지낸다.


작은아들을 잃고 낙심하던 수바시와 우다얀의 아버지는 죽음을 맞이한다. 수바시는 벨라만을 데리고 인도로 간다. 그 사이에 가우리는 편지 한 장만을 남기고 로드 아일랜드를 떠나 자신이 임용된 학교가 있는 캘리포니아로 떠난다. 수바시도 충격에 빠지지만 수바시보다 훨씬 큰 충격을 받은 것은 아직 10대에 불과한 벨라였다. 벨라는 그 충격을 이겨내고 아버지인 우다얀의 기질대로 유랑하며 지낸다. 그리고 딸을 얻게 된다. 아이의 아버지에게는 알리지 않은 채로. 그리고 자신을 최선을 다해 키워준 수바시의 삶을 인정하고 뒤늦게 자신을 찾아온 벨라는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벨라는 자신의 딸을 매개로 벨라에게 언젠가는 자신들이 화해 할 수도 있을 거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수바시는 노년에 새로운 짝을 만난다. 하지만 수바시는 자신의 지나온 삶을 부정하지 않는다. 부정한다고 바뀔 수 없는 것이 삶이 거니와 젊었을 때 노년에 만난 새로운 존재를 만났다면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말 오랜만에 깊이 빠져들어 읽었던 책이다. 수바시, 가우리, 우다얀, 벨라는 주어진 조건 속에서 어려운 선택을 감행한다. 주어진 삶과 선택한 삶 사이에 그들은 누구도 치명적인 고독을 피하지 못했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이 어떠한 선택을 했을지라도 나는 『저지대』의 선택을 지지했을 것이다. 좋은 소설은 문장과 그 문장이 직조해 나가는 정조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해준 소설이었다. 이 좋은 작품을 읽으면서 떠올린 내 인생의 소설들은 『가벼운 나날』(제임스 설터), 『스토너』(존 윌리엄스), 『태연한 인생』(은희경)이었다.


명작이다. 좋은 작품이다. 라는 추천을 받고 읽은 책 중에 공감이 가지 않는 경우는 부지기수다. 좋은 작품이라는 것은 알겠지만 몰입이 어려운 책도 많다. 『저지대』는 좋은 작품이라는 기대치를 여지없이 충족시켜 주면서도 깊이 빠져들 수밖에 없는 소설이었다. 주어진 삶과 선택한 삶 사이의 괴리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이 어려운 질문 앞에서 우리는 망연자실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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