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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창희 Aug 25. 2020

영상 서사의 특수성과 보편성

2020년대 한국 영상 서사에 관한 하나의 관점

홍원찬 감독이 연출한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이하 다만악)>가 400만 관객 돌파를 앞두고 있다. 아마도 코로나가 다시 악화되지 않았다면 500만 관객을 돌파할 수도 있는 흐름이었다. <다만악>은 장르의 세계다. 일본에서 출발해서 잠깐 한국으로 왔다가 태국의 총격전으로 마무리되는 <다만악>에서 대한민국이라는 특수성은 두드러지지 않는다. <다만악>을 보고 내가 떠올린 영화는 <테이큰>이었다. 개인적인 소감은 동구권 테러리스트들을 바보로 만들어 버리는 <테이큰> 보다 <다만악>이 훨씬 양질의 서사로 느껴졌다. 홍경표 촬영감독의 훌륭한 촬영은 세 개의 국가를 각기 다른 톤으로 그린다. 그 톤의 다름은 3개 국가가 가진 객관적인 특수성을 부각시키기 보다는 각기 다른 세계에 진입했다는 것을 인식시키는 데 기여 한다.         


최근 김정은이 김여정에게 통치권의 일부를 이양한다는 보도가 되면서 다시 큰 주목을 받고 남북관계는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국민들에게 언제나 민감한 이슈일 수밖에 없다. 나는 스토리텔러로서 양우석 감독을 신뢰한다. 그가 보여주고자 하는 서사에 동의하건 동의하지 않든 간에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분명히 전달할 줄 아는 창작자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변호인>과 <강철비1>이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하면서도 메시지가 과잉처럼 느껴지지 않았다면 <강철비2>는 감독의 의도가 너무 명확하게 드러나서 다른 두 작품보다 서사적으로 덜 흥미로웠다. 하지만 본인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집중하는 양우석 감독의 태도에는 지지를 보낼 수밖에 없다. 대형투자를 요하는 영화라는 장르에서 이런 태도를 견지할 수 있는 창작자는 많지 않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만악>이 국적과 무관한 장르의 세계라면 <강철비2>는 대한민국의 특수한 지정학적 이해관계에 대한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흥미를 느낄 수 없는 서사일 수도 있다. <다만악>이 보편적 글로벌을 지향하는 종류의 영상 서라면 <강철비2>는 대한민국의 특수성을 전면에 내세운 영상 서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콘텐츠가 글로벌을 지향한 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그렇다고 모든 콘텐츠가 글로벌을 지향할 수는 없다. 이규탁은 『갈등하는 케이, 팝』에서 이 딜레마를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글로벌을 지향할 경우 대한민국에서 가치가 떨어지는 콘텐츠가 될 수 있고 대한민국의 특수성에 집중할 경우 보편성을 획득하기 어려워진다. 산업의 관점에서 규모의 경제를 지향해야 하는 콘텐츠 분야에서 글로벌을 지향할 것인지 로컬을 지향할 것인지는 이제 가장 근본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일 수 있다.      


문제는 특수성을 지향할 것인지 보편성을 지향할 것인지는 단순히 산업적인 가치에만 국한되는 사항이 아니라는 데 있다. 글로벌을 지향하는 서사와 로컬을 지향하는 서사는 서사가 지닌 비평적 가치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둘이 행복하게 만나기란 무척 어렵다. 물론, 우리에게는 <기생충>이라는 모범답안이 주어져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영상 서사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것에는 주어진 모범답안이란 있을 수 없다.      


코로나라는 재난이 길어지면서 좀비가 등장하는 영상 서사들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코로나 이전에도 좀비와 관련된 서사는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영상 서사 장르로 큰 인기를 얻고 있었다. 후지타 나오야는 『좀비 사회학』을 통해 좀비 서사를 지금의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는 장르라고 지적한다. ‘우리’이외의 집단을 상정하고 혐오를 부축이고 있는 현재의 시대적 상황을 좀비 장르가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후지타 나오야는 좀비 서사가 시대적 정신을 반영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러한 시대 정신을 강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선후 관계를 헤아리기는 어려우나 후지타 나오야의 지적에는 동의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이용자들이 좀비 서사에 익숙해 진지는 오래되었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산업적인 경쟁력과 비평적 가치를 지닌 영상 서사들이 제작되고 있다. <킹덤>도 있지만 좀비라는 이름을 들으면 떠올리게 되는 대한민국의 창작자는 아마도 연상호일 것이다. <부산행>, <서울역>의 세계관을 계승하고 있는 <반도>는 이제 ‘연니버스’라고 불리는 세계관에 입각해 만들어진 영화다. <부산행>의 속편이지만 <부산행>을 보지 않은 관객들이라도 보는 데 아무런 지장은 없다. 호불호가 갈리고 신파적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반도>가 해외에 내놓아도 별다른 손색이 없는 좀비 서사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연상호 감독은 어떤 측면에서 지금까지 그 어떤 창작자도 해낸 적이 없는 길을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내가 언급한 순서대로 <다만악>, <강철비2>, <반도> 이 세 작품은 코로나라는 악재를 만나고도 나름대로 많은 관객들이 극장을 찾게 한 영화들이다. 글로벌과 로컬 사이의 긴장은 2020년대 한국의 영상서사를 이해하는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을 지향하느냐 로컬을 지향하느냐를 떠나 좋은 서사여야 한다는 것은 언제나 마찬가지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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