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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창희 Sep 05. 2020

현대인의 불안을 대표하는 서사로서의 좀비

후지타 나오야.『좀비 사회학』.

‘좀비’가 대한민국에서도 친숙해 진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헐리우드 영화를 통해 좀비를 접한 지는 수십 년이 넘었고, <부산행>, <킹덤>과 같이 국내 영상 서사의 소재로 좀비가 활용되는 것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이미 21세기 서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좀비 서사가 갖는 위상은 코로나 사태로 인해 더욱 중요해 질 것으로 보인다. 좀비가 되는 경로 중 상당수가 감염을 통해 일어나기 때문이다. 반년 이상 감염병으로 신음하고 있는 인류에게 좀비 서사를 접하는 일은 괴로운 일이 될 수도 있지만 가장 큰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서사이기도 하다.        


후지타 나오야의『좀비 사회학』은 좀비 서사가 왜 이렇게 중요해 졌는지를 다양한 각도에서 다룬다. 나에게 『좀비 사회학』이 흥미로웠던 지점은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일본의 상황보다는 좀비 서사가 유행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는 거시적인 관점이었다. 좀비 서사가 갖는 의미에 대해 다루기 전에 서사를 포함한 대중문화가 사회적으로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살펴보자.     


“영화와 만화 등의 작품은 ‘대중의 무의식’을 표현한 것이기도 합니다만, 다른 한편에서 그 작품 자체가 오히려 ‘대중의 무의식’에 영향을 미치는 측면도 있다는 말입니다(33쪽).” 대중의 무의식이 서사에 반영되는 것인지 서사 때문에 대중의 무의식이 형성되는 것인지 선후를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분명한 것은 특정 서사와 대중의 무의식이 결합되면 그 서사가 갖는 효과가 보다 강력해 진다는 것이다. 지금의 좀비 서사가 바로 이런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후지타 나오야는 좀비와 신자유주의 사이의 관련성에 대해 얘기한다. 좀비 서사가 기능하는 가장 강력한 영향은 ‘우리’와 ‘나’를 구분하는 것이다. “그 핵심에 있는 것은 ‘세계는 위기적 상황에 처했고’, ‘우리/그들 사이의 벽을 만들어’,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타인의 희생은 상관없다’는 사고방식입니다. ‘좀비 포맷’은 그 전형적인 현상인 것입니다(40쪽).” 생존에 대한 강박은 신자유주의 체제하에서 강화되었고, 이것은 타자에 대한 혐오로 나타나고 있는데 좀비 서사의 형식은 전형적으로 이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좀비는 우리는 감염시키는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가 적대시해야 하는 대상이 된다. “좀비 포맷이란 신자유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주체들의 내면을 어느 한 방향으로 유도하기 위한, 정치적인 효과를 지닌 ‘소프트 파워’인 것입니다. 좀비 포맷을 내포한 작품은 ‘신자유주의’에 적응하기 위한 시뮬레이션으로 기능합니다. 관객이 작품을 보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신자유주의를 정당한 것으로 느끼는 효과가 있습니다(37쪽).”     


좀비 서사의 정치적 영향과 사회적 영향을 떠나 좀비 서사가 현대인들이 느끼는 존재의 불안을 표상하는 서사인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후지타 나오야는 지그문트 바우만을 인용하면서 좀비가 사람들의 불안에서 나타난 것이라고 지적한다. “좀비란, 근대가 ‘리퀴드 모더니티’시대로 접어들어서 생겨난 사람들의 불안에서 온 것이 아닌지 말입니다(71쪽).”이런 면에서 좀비 서사는 긍정적인 기능을 수행하기도 한다. “현대 좀비는 유동성에 대한 메타포입니다. 거기엔 ‘유동성’이야말로 ‘불안의 원인’이라고 적확하게 지적함으로써 부적절하게 증오를 분출시키는 것을 막는 기능도 있다는 말입니다(73쪽).”     


좀비 서사는 앞으로도 더욱 많이 양산될 것이고, 그에 따라 좀비 서사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의미, 정치적 의미, 문화적 의미를 따져 묻게 되는 것이 필요해 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후지나 나오야의 『좀비 사회학』은 우리에게 생각해 볼만한 유익한 관점들을 소개해 주고 있다. 우리에게 좀비 서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앞으로 더욱 중요해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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