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에 대한 믿음, 삶이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

김영민.『공부란 무엇인가』.

by 노창희

내가 김영민이라는 저자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를 읽고 나서였다. 이 책에 대한 나의 감상을 간단히 정리하자면 ‘비관주의라는 실용주의, 관조의 대상으로서 삶’이다. 삶에 대해 쉽게 낙관하는 태도는 만만치 않은 인생이라는 파고 앞에서 삶의 동력을 얻는데 장애물이 될 수 있다. 삶을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그것을 위해서는 삶을 관조의 대상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우리는 태어나고, 자라고, 상처 입고, 그러다가 결국 자기 주변 사람의 죽음을 알게 된다. 인간의 유한함을 알게 되는 이러한 성장 과정은 무시무시한 것이지만, 그 과정을 통해 확장된 시야는 삶이라는 이름의 전함을 관조할 수 있게 해준다. 그 관조 속에서 상처 입은 삶조차 비로소 심미적인 향유의 대상이 된다. 이 아름다움의 향유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은 시야의 확대와 상처의 존재다(『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37쪽).”


삶을 관조의 대상으로 삼는 일은 주어진 삶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의 삶을 성찰적으로 규명하여 삶을 이해하고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끔 한다. 그를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공부’다. “이곳에서는 사람들이 고도의 경쟁 상태 속에서 각자 버틸 수 있는 이상의 에너지를 일에 쏟아 넣고 있는데, 그 일과 삶의 궁극적인 의미에 대해서는 묻기를 꺼릴 뿐 아니라 그 경쟁 과정이 공정하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이곳은 어떤 곳이란 말인가(8-9쪽).” 이곳은 다름 아닌 대한민국이다. 앞에 인용되어 있는 김영민의 문장을 읽은 어떤 이는 말할 것이다. 아니 대한민국처럼 열심히 공부하는 나라가 또 어디 있느냐고. 김영민이 얘기하는 공부는 대부분의 대한민국 사람들이라면 경험해 보았을 ‘입시’를 위한 공부가 아니다. 그럼 어떤 공부인가? 정체성에 관한 질문에 쉬운 답변이 가능할 리 만무하다. 이 책의 1장 ‘공부의 길’의 부제를 빌려서 얘기하는 것이 그나마 짧은 답변이 될 수 있을 듯하다. 이 책에서 얘기하는 공부는 입시나 학점을 따기 위한 공부가 아닌 ‘지적 성숙의 과정’으로서의 공부다.


『공부란 무엇인가』를 관심을 가지고 읽을 수 있는 독자는 아마도 대학원에 진학하여 남들보다 오랜 기간 공부한 사람들일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학자들에게만 유용한 책은 아니다. 유용한 조언들이 많지만 무엇보다 이 책은 공부를 바라보는 태도에 관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주체성을 가지고 공부하면 나의 삶이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관점이 『공부란 무엇인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공부에 대한 태도가 아닌가 싶다.


“이 사회를 무의미한 진창으로부터 건져낼 청사진이 부재한 시기에, 어떤 공부도 오늘날 우리가 처한 지옥을 순식간에 천국으로 바꾸어주지는 않겠지만, 탁월함이라는 별빛을 바라볼 수 있게는 해줄 것이다. 이미 존재하는 더 나은 것에 대한 감수성을 길러주고, 나아가 보다 나은 것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믿게 할 것이다. 그러한 믿음 속에서야 비로소 비방과 조소를 넘어서는 논리와 수사학의 힘을 빌려 공적 영역을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14쪽).”


『공부란 무엇인가』는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에 이어 내가 읽은 김영민 교수의 3번째 책이다. 김영민의 말처럼 논리를 전하는 글은 명료해야 한다. 하지만 명료한 글이라고 해서 문학적 감수성을 포기해야만 한다는 뜻은 아니다. 좋은 문학적 문장은 우리에게 설명하기 어려운 무언가를 기어이 남긴다. 김영민의 글은 명료하지만 기어이 독자에게 설명하기 어려운 무언가를 남기고 그로 하여 그 문장을 다시 곱씹게 만든다. 다음에 나올 김영민의 책을 기다린다.


이미지 출처: 어크로스 페이스북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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