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버트 드레이퍼스, 숀 켈리.『모든 것은 빛난다』.
허무주의는 현대인이 겪는 본질적인 문제 중 하나다. 휴버트 드레이퍼스와 숀 켈리는『모든 것은 빛난다』에서 근대적 합리성에 의해 절대적인 존재를 의심받게 된 ‘신’의 격하된 위상을 현대인이 허무주의에 빠지게 만든 원인으로 꼽고 있다. “저것 아닌 ‘이것’을 선택하게끔 해주는 참다운 동기(20쪽)”를 찾기 어렵다는 것은 많은 현대인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이다. “현대 세계에서 우리는 더 깊고 어려운 문제와 마주하고 있다. 올바른 행동 과정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추구하지 못한다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는 무엇을 좋은 삶을 위한 첫 번째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지에 대해 아무런 판단력도 없다는 것이 문제다(38쪽).”
허무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내가 왜 이 세계에서 살아가야 하는지 의미를 찾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세계가 의미를 상실할수록 우리 자신에 대한 이해도 단조로워진다(364쪽)”는 것은 역설적으로 우리가 세계 속에서 의미를 발견해야 나 자신이 살아갈 이유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코로나가 오랜 기간 지속되고 있다. 밖으로 나가기가 꺼려지고 사람들을 자유롭게 만나기 어려운 지금의 이 상황은 ‘이전의 세계’와는 다른 ‘이후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게 될 것을 예감하게 한다. 자유가 제약되는 지금의 상황은 자칫 현대의 고질적 병폐인 허무주의가 심화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하게끔 한다. 그럼 코로나로 인해 더욱 심화 될지 모를 허무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가장 먼저 해야 할은 코로나 이전의 세계에서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 졌던 일상의 의미를 돌아보는 것 아닐까?
“우리가 알든 모르든, 이미 우리는 주변의 모든 일들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게 분명하다. 의미가 밝혀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세계처럼 인간은 자신 속에 수많은 관심의 양태들을 숨겨두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말이 상당히 의아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나의 관심이 나의 이해보다 더 크다는 말은 자기 인식의 근본 원리를 부정하는 말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어떤 것에 관심을 갖고 있다면, 나는 이미 그것을 알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자율성에 대한 계몽주의적 전통은 바로 이런 원리를 제시하고 있으며, 현대 철학에서는 그것을 확신의 문제라고 본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에 대해 아는 것 이상으로 확장될 수 있는 존재, 즉 세계를 의미심장하게 드러내주는 정조들에 자신을 열어두고 있는 존재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 존재의 확장은 무엇에 관심을 가질지를 결정하는데 있지 않고, 이미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을 발견하는 데 있다는 얘기다(366-367쪽).”
위의 단락은 나는 세계가 나에게 의미를 부여해 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이미 내가 알고 있는 세계의 의미를 새롭게 창안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읽었다. 코로나 이전에 내가 놓치고 있는 일상의 의미는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지금도 내가 놓치고 있는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 물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사상 초유의 재난 속에서 모두가 신음하고 있는 지금 가뜩이나 발견하기 어려웠던 삶의 의미를 찾는 일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들이 빛나는 건 아니라네. 다만 빛나는 모든 것들이 존재하는 것이지(379쪽).”라는 『모든 것은 빛난다』의 마지막 문장은 삶을 빛나게 하는 것은 존재 그 자체가 아니라 존재의 의미를 발견하려는 노력 속에서 얻어진다는 것을 말해준다. 어려운 시기다. 버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닌 만큼 일상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