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와 불안 그리고 고독의 연대

은희경.「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2020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by 노창희

누군가가 제일 좋아하는 소설가를 묻는다면 답하기가 쉽지 않다. 그것이 어려운 대단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있어 보이게 대답하고 싶은 유혹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필립 로스나 제임스 설터라고 대답하고 싶지만 그것은 내 마음속 실체적 진실에서 조금 벗어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빠지기 쉬운 유혹임에도 불구하고 그럴 수는 없다. 나는 한국 작가들의 소설을 읽으며 소설 읽기의 재미를 느꼈고 의미를 배웠다. 전자에 관해서는 또다시 고민이 되는데 시기에 따라 재미를 주는 작가 리스트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후자에 관해서라면 아무런 고민이 없다. 나에게 소설이라는 매체가 갖는 의미나 의의가 무엇인지 가장 많이 가르쳐 준 작가는 은희경이다.


아직까지도 ‘냉소’나 ‘위악’으로 은희경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은희경의 소설을 한참 오래전에 읽은 사람이다.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부터 은희경의 소설을 관통하는 단어를 하나만 꼽자면 그것은 ‘고독’일 것이다. 이 시기부터 은희경의 작품에 대해 ‘따뜻해진 은희경’과 같은 표현으로 설명하는 것에는 부적절하다는 이성적 판단에 더해 희미한 분노마저 느낀다. 부족하나마 거칠게 표현해 보자면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괄호를 치고 객관화하여 보려고 노력하던 작가는 태생적으로 고독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 어떻게 다른 인간과 연대해 나가야 하는지로 관심이 옮겨 왔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고독의 연대’는 2010년를 전후로 한 은희경의 작품들에서 거의 공통적으로 다루고 있는 주제다. 「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 역시 마찬가지다.


잡지사 계약 만료를 앞두고 승아는 충동적으로 민영이 거주하고 있는 뉴욕으로 떠나기로 결정한다. 민영과 승아는 마냥 친밀한 관계처럼 보이지 않는다. 둘의 미묘한 사이는 『빛의 과거』에서 김유경과 김희진 사이를 떠올리게 만든다. 잡지사를 그만둘 즈음 세상의 모든 것이 자신을 밀어낸다고 느낀 승아는 자신을 대하는 민영의 태도에서 민영조차 자신을 밀어내는 것처럼 느낀다. “떠나오기 전 그녀는 주변의 모든 것이 자신을 밀어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떠나온 지금은 이 도시에서 유일하게 아는 사람인 민영에게 거부당하는 기분이었다(70쪽).”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은희경의 작품에서 외국에 거주하고 있는 이들은 대체로 자국에서 어떠한 이유로든 밀려난 이들이다. 민영도 마찬가지다. 낯선 미국에 와서 타인들과 잘 섞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민영을 초조하게 만드는 마이크는 민영에게 친절하고 다정하지만 좀처럼 남자친구로 발전할 여지는 주지 않는다. 민영은 경계 앞에서 불안을 느끼고 있고 그 불안은 승아를 환영할 수 있지만 환대할 수는 없게 만든다. 물론 그 경계로 인한 불안을 느끼게 하는 것이 마이크 하나만은 아니다. 맨해튼이 인종의 용광로라는 것은 다른 한편으로 수많은 경계로 이루어진 불안의 집합소라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경계 밖에서 온 이들은 그 때문에 불안해하고 경계 안에 있던 이들은 새로 유입된 이들 때문에 불안을 느낀다. 이런 불안을 느끼고 있는 민영이 승아를 온전히 이해하기는 불가능하다. 물론, 한 존재가 다른 존재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불가능하다.


자신에 대한 몰이해와 그 때문에 고독을 느끼는 존재의 불안은 은희경의 소설에 즐겨 등장하는 테마다. 하지만 그 테마에 쉽게 질리지 않는 것은 독자의 기대치를 저버리지 않는 유의미한 차이와 반복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빛의 과거』에서 김유경과 김희진이 각자에 대한 몰이해를 청산하는데 40여년이 세월이 필요했던 반면, 「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는 민영이 엄마에게 줄 선물이 잘못 도착하는 하나의 사건으로 충분했다. 여기서 청산되는 것은 자신에 대한 몰이해가 아니다. 네가 나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음으로써 타인과 연대할 수 없다는 불신이 청산된다는 것이다. 나는 이 성급해 보이는 봉합에 처음에는 납득되지 않았다가 두 번째 읽고는 다시 한번 은희경에게 설득되고 말았다. 몰이해와 그에 따른 불안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경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삶이 지속될 수 있는 것은 그래도 연대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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