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과 개인의 존엄성 그리고 사랑

임경선. 『기억해줘』.

by 노창희

우리 나이로 40이 되었고, 첫 직장을 다닌 지 만 10년이 되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명절 지내는 것을 힘들어하는 편인데, 외적으로는 가장 평온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힘든 추석을 보냈다. 꼭 꼬집어서 무엇 때문이라고 하기는 힘들다. 가장 추상적으로 표현해 보자면 ‘고독’이 이유일 것이다. 내가 느끼는 고독은 주변에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나에 대한 지독한 몰이해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분명해지는 것은 한국에서 조직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어떤 종류의 폭력에 익숙해 져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폭력을 행사했을 수도 있다. 내가 얘기하는 종류의 폭력은 물리적인 폭력이 아니다. 개인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모든 것을 지칭하는 것이다.


존엄한 개인에 대해 소설로든 에세이로든 임경선만큼 잘 읽히게 쓰는 한국 작가는 드물다. 존엄한 개인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몇 사람 중 하나가 이동진이다. 자연인 자체와 그의 글을 무척 좋아하지만 한 가지 동의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 독서가 오락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그의 말을 신뢰하지만 나에게 독서가 오락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내게 독서는 근육이 필요한 지적인 운동이지 유희가 아니다. 다만, 예외적인 몇몇 작가의 책은 오락과 동시에 위안이 된다. 임경선은 내게 그런 존재 중 하나다. 추석 연휴 때 고요한 서울 시내를 걸으면서 이동진이 진행했던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출연한 임경선의 목소리를 들었다. 『기억해줘』 출간을 계기로 그 방송에 출연했던 것 같았다. 아직 『기억해줘』를 읽지 않았던 나는 아무런 고민 없이 『기억해줘』를 주문했다.


“시간이 흘러 조금은 성숙해지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만의 지옥을 내면에 품고 살아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중 나를 사로잡은 것은 불평 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과 고독을 삼키며 혼자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들이었다(「작가의 말」, 227쪽).” 나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임경선이 등장시키는 인물들을 좋아한다. 주인공인 해인과 안나는 불우한 유년 시절을 겪는다. 그것은 그들 부모가 가지고 있는 고독의 무게와 관련이 있다. 어떠한 부모도 자식을 위한 판단만을 할 수는 없다. 설혹 그것이 온전히 선의로 이루어진 것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연인인 유진과 헤어진 해인은 불우한 유년 시절을 보냈던 미국으로 갔다가 기적처럼 그 시절을 함께 통과했던 안나와 재회한다. 서로에게 가장 절실한 존재였음에도 불구하고 해인과 안나는 서로를 이해하는데 실패한다. 그리고 안나가 엄마의 선택으로 고등학교 2학년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면서 그들은 자신들에게 필요한 유일한 존재와 헤어진다.


해인과 유진은 부모들을 원망했지만 어른이 되면서 그들을 이해하게 된다. 그것이 진정한 성장 아닐까? 『기억해줘』에서 중요한 것은 해인과 안나가 존엄한 개인으로 성장하여 자신의 고독을 감당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해인과 안나에게 작은 축복을 선사한다. 그들을 재회시킨 것이 그것이다. 연인인 유진을 아직 사랑하는 해인은 안나와 해후하지만 더 이상 인연을 이어나가지는 않는다.


미술 교사가 된 해인이 다시 그림을 그리고자 마음을 먹고 떠나간 유진이 돌아온다는 결말을 다소 편의적이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 결말이 전해주는 온기가 좋았다. 존엄한 개인이 된다는 것과 고독이라는 것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쌍이다. 온전한 나로 살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몰이해에 시달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임경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사랑이라고 말한다. 이 당위에는 설득당하지 않기 어렵다. 이 책을 읽고 작은 위안을 느꼈다. 작지만 그 위안만큼 소중한 것을 찾기는 힘들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우리’의 ‘사랑’은 ‘어디’에서 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