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사랑’은 ‘어디’에서 왔어?

김금희.「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2020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by 노창희

“이상한 사람을 만나고, 이상하지만 이상해서 끌리는데, 그게 꼭 연애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지라도 그로 인해 내가 달라지고야 마는 이야기(신형철 리뷰「심미적 연대의 원예학」, 270쪽, 『2019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파주: 문학동네)”라는 신형철의 정리만큼 김금희의 소설을 잘 요약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서 『2019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에 실린 「마지막 이기성」에 대한 리뷰를 쓸 때도 위에 인용한 신형철의 정리로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마지막 이기성」을 읽고 김금희 소설들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연애소설을 쓰려다가 실패해서 연대소설이 된다고. 물론, 이와 같은 정리도 신형철의 리뷰에 힘입은 것일 뿐 대단한 독창성이 가미된 정리는 아니다.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는 전형적인 김금희표 연애소설이다. 이 정도로 김금희표 연애소설이 축적되었다면 김금희는 자신만의 인장이 박힌 세계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김금희표 연애소설이 거치는 경로는 대략 다음과 같다. 40대를 전후로 한 주인공이 삶에서 어떤 국면을 맞이한다(이것을 ‘위기’라고 하자). 김금희의 출세작이라고 할 수 있는 「너무 한낮의 연애」를 따라가 보겠다. 주인공인 필용은 퇴사 권고로 보이는 수준의 팀 배치를 받는다. 과거에 연애 비슷한 무언가를 했던 양희가 연극을 연출한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다(이것을 ‘계기’라고 하자). 그리고 과거 필용과 양희가 어떠한 일을 겪었는지 액자 구성의 형태로 연애담을 들려준다(이것을 ‘연애담’이라고 하자. 그것도 ‘연애’라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필용이 양희와의 과거를 되짚어가면서 필용의 내면에 무언가 변화가 일어난다(이것을 ‘성장’이라고 하자).


김금희표 연애소설은 ‘위기-계기-연애담-성장’의 구성을 가지고 있고,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도 마찬가지다. 엄마와 둘이 살던 기간제 교사 은경은 엄마가 죽고 이사할 집을 알아본다(위기). 이 시기에 과거 잠시 연애감정 비슷한 것을 느꼈던 기오성에 관한 인터뷰를 의뢰받게 된다(계기). 은경-오성-강선 사이의 삼각관계가 액자 구성으로 배치된다(연애담). 은경은 오성과 강선과의 삼각관계를 떠올리면서 무언가 석연치 않았던 과거를 받아들이게 된다(성장). “어디에서 왔는지도 알 수 없고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겠어서 울고 싶은 기분으로 그 시절을 통과했다는 것. 그렇게 좌절을 좌절로 얘기할 수 있고 더이상 부인하지 않게 되는 것이 우리에게는 성장이었다(40쪽).”


오성에게 적극적이었던 것은 강선이었고, 오성의 마음이 어느 쪽에 있었는지는 쉽게 확인할 길이 없다. 다음의 문장을 통해 오성도 은경에게 어떤 ‘마음’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뒤에도 우리가 모란시장을 걷는 시간은 조금씩 길어졌고 나는 푸성귀며 고기며 생선과 화초가 뒤섞여 있는 시장 어딘가에서 웃었고 사랑이 발생했다고 생각했다(21쪽).”


나는 김금희표 연애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20대와 40대라는 시차와 그 시절 발생했던 관계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모호함에 있다고 생각한다. 20대는 무언가가 발생하기 쉬운 시기이다. “삶의 뭉근한 긴장 속으로. 그것은 확실히 발생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날들이었다(20쪽).” 그리고 서툰 시기이다.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는데도 서툴고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는데도 서툴다. 반면에 감정 표현에 있어서는 과감할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문제는 김금희가 등장시키는 인물들은 감정 표현에 있어 소극적이라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갈등의 여지가 생길 거 같으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편을 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은경은 오성을 향한 강선의 마음을 알고는 오성과 더이상 가까워지지 않는 편을 선택한다. 문제는 명쾌하게 정리되지 않은 마음이 잔여물을 남긴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 대상에 대한 미련이라기보다는 그 시절에 대한 회한에 가깝다. “그게 뭐라고, 연애랄 것도 없는 일인데 싶으면서도 뭔가 그렇게 넘길 수만은 없는 대목이 있었다(31쪽).”


40대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되묻기 좋은 시기이다. 책임은 늘어나고 선택의 폭은 줄어든다. 이 시기에 하기 좋은 일 중 하나는 과거의 선택에 대해 돌아보는 것이다.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가장 긍정적인 태도는 과거를 과거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그때 너는 왜 나한테 그렇게 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때 ‘우리’의 ‘사랑’이 어떤 식으로든 존재했다면 그 사랑의 존재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바로 이때 ‘성장’이라는 사건이 발생한다. “‘나임’과 ‘너임’, 궁극으로는 ‘우리임’을 찾아야 한다(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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