닿을 수 없는 시절에게, 닿기 어려운 당신에게

김금희.『복자에게』.

by 노창희

누군가에 편지를 쓰고 싶은 날이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저 투덜대고 싶은 것일 수도 있고, 켜켜이 쌓아 두었다가 이제는 폐기 되었다고 생각되는 어떤 감정이 다시 모락모락 피어나는 것일 수도 있다. 폐기 된 감정을 다시 떠올리게 되는 것은 대개 그것이 실패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성공의 영광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아련하게 남기지 않는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것은 우리가 인생에서 겪게 되는 많은 국면은 성공보다는 실패와 관련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복자에게』에게는 영초롱의 실패에 관한 얘기이고, 관계가 어떻게 실패했는지에 관한 얘기다. 영초롱의 집은 IMF 때 경제적으로 완전히 파산 상태에 처한다. 영초롱은 할 수 없이 제주도 고고리 섬에 있는 정희 고모 집으로 간다. 그곳에서 복자를 만나고 유일한 친구로 지낸다. 하지만 유년기 친구 사이가 대개 그렇듯 서울로 돌아오기 전에 영영 회복될 수 없는 사이가 되고 만다. 영초롱에게 복자와 멀어진 일은 오랫동안 잊을 수 없는 상처로 남는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유년이라는 시간이 상처로 파이는 순간이 아니었을까(84쪽).”


어렸을 적부터 공부를 잘했던 영초롱은 판사가 된다. 하지만 영초롱의 가족은 IMF 이후의 실패에서 회복되지 못한 상황이다. “하지만 이런 파산과 파국과 자충수의 세상에 회복갱신이란 가능한 것일까?(14쪽)”『복자에게』에서는 회복될 수 없다고 말한다. 영초롱의 가족은 실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영초롱 자신도 뜻하는 바를 성취하지 못한다.


『복자에게』에서 법정으로 간 중요한 사건은 다음의 두 건이다. 하나는 영광의료원에서 일하던 복자가 파우더링(약을 빻는 일)을 하다가 유산한 것이다. 이 사건은 법정으로 가게 된다. 다른 하나는 영초롱을 고고리섬에서 살게 해 준 정희 고모의 친구 규정이 민준이 자살할 때 자살 방조죄 판결을 받은 것이다. 영초롱은 고고리 섬에 살던 시절 유일한 친구인 복자와 고고리 섬을 떠나기 전 의절하고 정희는 규정이 감옥에 간 이후 오랫동안 규정을 만나지 못하고 규정은 감옥에서 정희의 연락을 받기를 꺼린다.


정희와 규정의 사이와 영초롱과 복자의 사이는 한 쌍처럼 보인다. 정희는 규정이 출소한 이후에 규정과의 관계를 회복하는데 성공한다. 제주도에서 해후한 영초롱과 복자의 사이는 여전히 회복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복자는 영초롱이 자신과 관련된 영광의료원 사건을 담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얘기하고 영초롱은 그 말에 상처받는다. 물론, 복자는 영초롱에게 선의를 가지고 그 말을 전달한 것이다. 아마도 결과가 나빴을 경우 영초롱을 원망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고통에는 근육이 없다. 인생에서 무뎌지는 것이 있을 수는 있어도 고통은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고통은 그렇게 단련되기는커녕 어느 면에서는 더 예각화 되었다. 노출되면 될수록 예민하게 아프고 슬프고 고통스러워졌다(40쪽).”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 판사가 되었지만 영초롱은 결국 판사를 그만두고 만다.


영초롱은 결국 법복을 벗고 연구원 자격으로 독일로 떠난다. 내가 이곳을 떠나도 당신을 두고 먼 곳으로 떠나도 과거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내가 과거 이야기를 잘 하지 않고 딱히 그리운 시절도 없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그건 다 잊어서는 아니었다. 그냥 무거워서 어딘가에 놓고 왔을 뿐이었다(57쪽).”


그렇다면 『복자에게』는 실패에 관한 얘기일까? 맞다. 하지만 인생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복자에게』가 전해주는 메시지일까? 그것은 아니다. “사실 내게는 있었을까, 그런 믿음이. 1999년의 그날부터 지금까지 나는 얼마나 세상을 믿었을까. 부모를 믿었을까. 그들의 실패는 나를 불행하게 만들려던 것이 아니라 그들로서도 어떻게 할 수 없이 속수무책으로 밀려왔다는 것을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받아들였을까(218쪽).” 실패를 받아들임으로써 인생을 실패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복자에게』가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이 아닐까?

“소설을 다 쓰고 난 지금, 소설의 한 문장을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실패를 미워했어, 라는 말을 선택하고 싶다. 삶이 계속되는 한 우리의 실패는 아프게도 계속되겠지만 그것이 삶 자체의 실패가 되게는 하지 말자고, 절대로 지지 않겠다는 선언보다 필요한 것은 그조차도 용인하면서 계속되는 삶이라고 다짐하기 위해 이 소설을 썼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작가의 말」, 242-243쪽).”


실패하더라도 삶은 계속되어야 하고 이와 같은 삶의 지속성이 우리를 실패로부터 벗어나 위안을 줄 수 있다고 믿는 일.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고 보니 이 팬데믹 시대에 그것은 모든 이들이 두 팔로 들어볼 수 있는 말이 아닌가 싶었다. 우리는 생존하고 싶다고. 전염병으로부터. 불행으로부터, 가난이나 상실이나 실패로부터(232쪽).” 실패를 되돌려 놓을 수 없는 닿을 수 없는 시절에게, 코로나로 인해 직접 만나기 어려워진 누군가에게 지금의 실패를 잘 견뎌보자고 말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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