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이 된 연인들

정영수. 「내일의 연인들」

by 노창희

삶은 간단치 않다. 그 간단치 않음의 정점에 ‘관계’라는 것이 있다. 정영수의 소설들은 연인들의 관계를 다룬다. 소설은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설명하는 장르가 아니다. 더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인과관계가 명확한 소설은 좋은 소설이 되기 어렵다. 좋은 소설은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다루기 힘든 지점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런 소설들은 독자들에게 무언가를 남기고 그 무언가에 대해 곱씹게 만든다.


“고유한 모름에 도달하는 것이 훌륭한 앎이라는 이 역설적 논리는 소설의 화자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어떤 화자가 신뢰감을 준다는 것은 그가 잘 배울 줄 안다는 것이고, 그의 능력은 제 무능력을 깨닫는 고유한 방식에 있다는 것(신형철, 「해설: 밤의 연인들을 위한 인생독본 삼부작」, 216쪽).”


신형철의 해설까지 읽고 나니 내가 정영수의 소설들을 왜 좋아하는지 상대적으로 명확해졌다. 정영수의 소설들은 관계의 실패를 다룬다. 관계가 왜 실패할 수밖에 없는지를 다룬다기보다는 마치 관계란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서 그걸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내일의 연인들」의 정안과 지원은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사이이다. 정안과 지원만 보면「내일의 연인들」은 정영수의 소설들과는 다른 결을 가진 소설이라고 추측해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내일의 연인들」 역시 관계의 실패에 대한 소설이다. 아니 어쩌면 조금 더 잔인할 수도 있다. 관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예감에 관한 소설이기 때문이다.


정안은 어릴 적 가족같이 지냈던 자신보다 여섯 살이 많은 선애로부터 집을 맡아 달라는 전화를 받는다. 이 전화가 의미심장한 것은 선애가 정안에게 집을 맡아달라고 부탁한 이유다. 선애는 이혼을 했는데 재산 정리 과정에서 생각보다 집이 잘 팔리지 않아 정안에게 집을 맡아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그저 너는 빌라는 사지 말라는 당부 외에는 별다른 말도 없이. 선애의 이혼은 정안이 이제 막 시작한 지원과의 연애와 대칭을 이룬다.

“그저 온전한 현재자(現在者)로서 존재(45쪽)”하고 있던 정안에게 선애의 제안은 일종의 구원처럼 다가온다. “우리는 구원까지는 아니어도 남현동 언덕 위에 있던 조용하고 아늑한 빌라가 적어도 우리를 구조하긴 했다고 여겼던 것 같다(64쪽).” 선애의 남현동 빌라에서 지원과의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던 정안은 자연스럽게 이 집에 같이 살았던 이제는 사랑의 생애가 다한 두 사람을 떠올린다. 그리고 선애의 지난 연인들을 떠올린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정말 어쩌다 헤어졌을까?(72쪽)””그 중 결정적이었던 것은 추락 사고를 당했을 때 정안을 지극정성으로 간호했던 정훈이었다.


선애는 정안에게 정훈과 헤어진 이유를 구체적으로 얘기하지 않는다. 다만, 헤어진 남편에게 끌릴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한다. 정안의 모친과 같이 선애와 가까운 이들조차 선애가 경제적 조건을 이유로 정훈과 헤어지고 이혼한 남편을 선택했다고 정안을 비판한다. 과연 이들이 정안을 비판할 자격이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내일의 연인들」에서 선애가 정훈과 남편과 왜 헤어졌는지에 설명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심지어 남편은 이름조차 알려 주지 않는다)? 관계는 언젠가는 생명의 주기를 다 한다는 서글픈 진실을 말해주고 싶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정안은 지원과 함께 빌라에서 밤을 보내면서 조용히 자신들의 관계에 대한 종말을 예감한다. “왠지 그 밤은 영영 지나가지 않을 무수히 많은 행복한 시간들과 외로운 시간들의 징후처럼 느껴졌다. 나는 비스듬히 누운 채 아직 잠들지 않았을 지원의 윤곽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는 어쩌면 그들의 유령들이 아닐까, 생각하면서(72쪽).” 관계가 유한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삶의 진실이라는 것. 신형철은 이것을 “삶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앎”이라고 표현한다. 그것은 부사를 지극히 경계하는 그가 ‘가장’이라는 부사까지 동원해야 할 만큼 중요한 앎이다. “삶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앎(지식)은 쉽게 말로 전달되지 않는 비명제적 지식에 속한다. 비명제적 지식을 배우는 일은 그냥 그런 것이 있다는 것만을 겨우 배우는 데서 멈추는 일이다. 그런 빛나는 멈춤의 순간을 창조하는 것이 작가의 일 아닌가. 저 젊은 연인들의, 어쩐지 잠들 수 없었던 그날 밤처럼(신형철, 「해설: 밤의 연인들을 위한 인생독본 삼부작」, 216쪽).”


정안과 지원은 언젠가 헤어질 것이다. 「내일의 연인들」에서 정안이 배우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이렇게 말해 버리면 이 앎이 단순해 보이지만 그것을 단순하게 만들지 않는 것이 바로 소설이 가진 인식적 가치이다. 신형철은 이 소설이 차갑지 않다고 하지만 나는 정영수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쓸쓸함을 느낀다. 그렇기는 해도 정영수의 소설을 읽고 배운 것이 있으니 그것으로 된 것일까? “정영수의 소설은 왜 차갑지 않은가. 성숙해지려는 마음은 차가울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는 조금도 가르치려 들지 않았지만, 우리는 얼마나 중요한 것을 배운 것인가(「해설: 밤의 연인들을 위한 인생독본 삼부작」, 2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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