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여선. 『오늘 뭐 먹지?』.
코로나가 길게 이어지고 있다. 나처럼 술자리가 잦은 사람들에게는 코로나로 술자리를 갖지 못하는 것이 반가울 턱이 없다. 그렇다고 아주 술자리가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예전보다는 집에서 저녁을 먹는 일이 늘어났다. 집에서도 술을 즐기는 나는 매번 시켜먹는 주문 음식에 지쳐갔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 요리를 시작했다. 실력은 형편 없지만 재료를 사서 직접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안주 삼아 마시는 술맛이 꽤 괜찮다. “술꾼의 미각도 안주 아닌 음식에는 작동하지 않는다(10쪽).” 연말이 되어 주말 출근이 잦아지면서 지쳐가던 탓에 출근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집어 든 책이 예전에 읽었던 권여선의 『오늘 뭐 먹지?』다. 요즘 내 상태에 최적의 힐링을 제공할 수 있는 책이었다. 옳은 선택이었다.
권여선 작가는 주로 ‘해서’ 드시는 반면, 나는 주로 ‘사서’ 먹어 왔다. 사서 먹던 때도 『오늘 뭐 먹지?』를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요즘 음식을 집에서 해 먹는 나에게 다시 읽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처음 읽을 때보다 재밌게 술술 읽혔다. 저녁에 해 먹을 감자탕을 위해 돼지등뼈를 찬물에 넣어 놓고 핏물을 빼주면서 그사이에 『오늘 뭐 먹지?』를 읽으며 간만에 힐링하는 기분을 느꼈다.
나이가 들수록 ‘먹는’ 행위만큼 의미가 큰 행위도 드물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사람들을 가장 소박한 기쁨으로 결합시키는 요소가 음식이라고 생각한다(189-190쪽).” 그래서인지, 다이어트 때문에 좋아하는 것만 최소로 먹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마실지(술 말이다)에 온 신경을 기울인다. 그런 내 모습에 그다지 죄책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방금 여기 적은 것처럼 그 행위가 너무도 의미 있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먹기’ 위해 산다는 말은 진리다. 슬픈 것은 지나치게 먹으면 살이 찐다는 거.
권여선은 본인이 매운맛 음식을 좋아하는 이유를 여름에 태어났기 때문일 것이라고 애기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내가 여름에 태어났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111쪽).” 사실 여기에는 아무 개연성이 없다. 잘 먹지는 못 하지만 겨울에 태어난 나도 매운맛 음식을 즐긴다. 하지만 제철 음식이라는 용어가 존재하듯이 먹는 일만큼 계절을 체감하게 하는 것도 드물다. 『오늘 뭐 먹지?』에는 권여선이 봄, 여름, 가을, 겨울에 좋아하는 음식들이 소개되어 있다.
“굶어보면 우리의 하루가 얼마나 먹는 일들을 중심으로 세세하게 구분되어 있는지 알게 된다. 세끼의 식사는 물론 커피도 간식도 술자리도 야식도 사라져버린, 그야말로 육중한 하루가 통째로 내 앞에 놓여 있었다. 무슨 일을 하든 누구를 만나든 시간이 늪처럼 고여 흐르지를 않았다(68쪽).” 먹기 위해 산다는 말을 부정하기 어려운 이유는 그만큼 먹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먹기 위해서만 살아서는 안 된다. 하지만 먹는 일을 하찮게 여겨서도 안 된다. 먹는 일이 좋다면 오히려 ‘잘 먹는’ 방법을 연구하는 편이 옳다. 그 잘 먹는 방법 중 하나가 집에서 음식을 해먹는 것이다. “공부와 음주의 공통점이 있다면 미리미리 준비해야 좋은 결과를 얻는다는 것이다. 아니, 생각해보면 세상 모든 일이 그렇다(129쪽).”
오랜만에 만화책을 읽듯이 책장을 쑥쑥 넘겨 가며 읽었다. 이런 책은 그만 쓰시고 소설만 쓰신다고 하셨는데 생각이 바뀌셨으면 좋겠다. 좋아하는 소설가라고 산문도 모두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 뭐 먹지?』로 인해 권여선의 산문까지 좋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늙은 ‘간순이’로서 새롭게 깨달은 바가 있다면, 음식의 맛에는 화학적 작용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마법적 작용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184쪽).” 이런 문장을 다시 만나고 싶기 때문에 권여선이 술과 음식에 관한 산문을 다시 쓰기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