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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창희 Dec 22. 2020

덕질의 효용

거의없다.『거의없다의 방구석 영화관』.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를 열심히 챙겨 보아야 한다는 마음의 부담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에게 이렇게 얘기하면 인생 참 피곤하게 산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일부로라도 봐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 생각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영화는 시대의 흐름과 사회의 모습, 대중의 기호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예술이다. 그리고 이런 것은 대부분 정치행위의 결과다. 그래서 정치가 중요한 것이고, 그러므로 당연히 영화 이야기에 정치를 기반으로 한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시선의 접근은 빠질래야 빠질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게 알맹이니까(132-133쪽).” 나는 위의 문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거기다 영화는 대중음악 보다 훨씬 풍부한 정보가 들어가 있고, 드라마 보다 문학적인 경우가 많다. 콘텐츠 제작에 있어서 가장 탁월한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또한 영화판이라고 생각한다.      


위와 같은 이유 때문에 영화를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내가 영화 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나도 잘 모른다. 책은 곧잘 보는 편인데, 영화는 시작해서 다 보는 영화가 드물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극장에 덜 가는 편은 아닌데 마음먹은 것에 비하면 해도 해도 너무 가지 않는다(올해는 코로나라는 핑계라도 있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는 하나가 더 있다. 영화는 좋아하지 않지만 남들이 영화 가지고 하는 얘기 듣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이게 왜 문제냐고? 그 얘기를 들으려면 영화를 봐야 하니까. 물론, 영화를 보지 않아도 들을 수는 있다. 하지만 너무도 당연한 얘기지만 영화를 보고 듣는 것보다 재미가 훨씬 떨어진다.     


거의없다는 요즘 청소년들의 선망의 대상인 유튜버다. 그것도 잘 나가는. 그가 출연하는 팟캐스트를 열심히 챙겨 듣다가 급기야 그의 책을 주문해서 다 읽어 버렸고, 그가 출연하는 다른 콘텐츠들도 찾아서 듣고 있다. 그의 말들이 카타르시스를 주는 것은 물론 묘하게 위안을 준다고 하면 본인도 좀 놀라려나? 사실인 걸 어쩌겠는가. 거의없다로 활동하고 있는 백재욱은 99학번이다. 그러니까 나랑 동년배다. 이미 팟캐스트를 통해 어느 정도 들은 바가 있던 거의없다의 암흑기와 그것을 극복해 낸 그의 스토리는 그야말로 재미와 감동이 공존하는 콘텐츠다.      


사업을 말아먹고, 민원 상담과 대리운전으로 빚을 탕감해 나가던 백재욱은 황당한 민원과 대결하다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원래 좋아하던 영화를 보면서 민원에 대응해 나간다. 근무 시간에 영화를 보면서 사람들의 독한 민원을 감내해 왔다는 것이다. “가장 엿 같은 순간에 함께한 것들이 가장 괜찮은 순간을 만들어내는 재료가 되다니. 인생이란, 참 어이없을 정도로 재미있지 않은가?(54쪽)”     


나는 좋은 에세이스트의 매력은 ‘솔직함’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좋은 사례는 김훈이다. 거의없다 백재욱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거의없다의 방구석 영화관』은 유튜버로서 혹은 방송인으로서 거침없이 얘기하는 그의 매력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책이다. 영화를 좋아한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영화라는 장르 자체에 관심이 많은 나 같은 사람에게는 상당히 유용하다. 그리고 잘 읽힌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        


“좋은 장르 영화를 만드는 일은 그래서 어렵다. 법칙을 너무 잘 따르면 지루한 영화가 되고, 그렇다고 완전 개무시하면 장르 영화로서 자격을 잃어버린다. 지키면서 깨야 하고, 깨면서 존중해야 한다(206쪽).” 앞의 문장은 비단 영화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대중을 상대로 하는 이상 너무 어려우면 성공할 수 없다. 하지만 수많은 콘텐츠가 범람하는 시대에 대중이 식상함을 느낄 수 있는 콘텐츠라면 성공할 수 없다. 진부함과 새로움. 이 사이에서 절묘하게 줄을 타야 성공할 수 있는 것이 영화라는 장르고, 대중문화다. 내가 보기에 거의없다가 가장 강조하는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이 지점이다.     


유튜브로서 거의없다는 왜 성공했을까? 나는 핵심을 정확히 가감없이 이야기하고 있다고 느꼈다.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딱 한 가지 비결을 뽑아본다면, 내가 진심으로 영화를 사랑했다는 점이다(332쪽).” 거의없다의 가장 큰 경쟁력은 영화를 많이 봤다는 것이다.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되려면 먼저 덕후가 돼라. 그냥 덕후 말고, 어지간한 사람은 혀를 내두르면서 기겁을 할 레알 찐덕후가(336쪽).”쉬운 일은 아니다. 그리고 거의없다의 매력은 풍부한 인생 경험에도 있기 때문에 영화만 많이 본다고 거의없다가 될 수는 없을 것 같다(게다가 목소리도 좋잖아).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 거의없다가 한 말 치고는 지나치게 교과서에 나와 있는 말처럼 들리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는 사례가 거의없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당장 행복하시길 바란다. 만약 지금의 즐거움을 참고 노력해야 할 가치가 있다면, 나는 그게 당신이 진심으로 사랑하는 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노력조차 대단히 즐거울 정도로 사랑하는 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348쪽).”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누구나 한 번쯤 곱씹어 생각해 볼 만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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