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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창희 Dec 19. 2020

2020년대 ‘서태지’를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

이동연.『서태지는 우리에게 무엇이었나』.

이충현 감독이 연출한 <콜>을 봤다. 콜이 나에게 소환시킨 것은 90년대와 서태지였다. 음악을 챙겨 듣지 않고 있는 입장에서 특정 아티스트나 곡에 대해 언급하기는 매우 조심스럽다. 하지만 그것이 90년대 한국의 대중가요라면 얘기는 조금 달라진다. 나는 90년대 한국 대중가요로 청소년기를 버틴 많은 사람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나는 서태지 팬은 아니었다. 『서태지는 우리에게 무엇이었나』에도 언급되어 있는 015B의 팬이었고, 그때나 지금이나 그리 좋아하는 장르는 아니지만 90년대 힙합하면 떠오르는 것은 서태지가 아닌 이현도다. 물론, 서태지가 힙합만을 만들고 노래한 아티스트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90년대 한국 대중음악 아니 대한민국 문화사에 있어 가장 역동적이었다고 평가받는 90년대 한국 대중문화에서 하나의 인물 혹은 하나의 현상을 꼽으라면 서태지를 꼽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나에게 90년대 하면 떠오르는 심상은 역동성이다. 대한민국의 90년대는 특정한 ‘무엇’으로 소환되기 어려울 만큼 다이나믹했다. 사전검열과 같은 시대착오적인 문화가 여전히 남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시도들이 이어졌다. 대중문화가 본격적으로 산업화되기 시작한 것도 바로 90년대였다.      


이처럼 독특했던 90년대적 맥락 속에서 서태지 혹은 서태지와 아이들은 독특한 위상을 갖는다. 서태지는 90년대 대중음악의 산업화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인물이지만 정작 당사자는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는 긍정적으로 평가하자면 현재 K-POP의 위상을 가능하게 했던 음악적 시스템과는 거리를 둔 아티스트였다. 서태지는 기획사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있는 존재였으며 그랬기 때문에 여러 가지 창의적인 실험을 할 수 있었던 존재였다.      

『서태지는 우리에게 무엇이었나』에서 이동연은 서태지의 도전의식과 실험정신을 높게 산다. “서태지의 음악적인 열정은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신세대들에게 미래에 대한 자신들의 삶의 태도를 두 가지 방향에서 지시해 준다. 그것이 바로 ‘도전의식’과 ‘실험정신’이다(254쪽).” 서태지가 갖는 중요성은 음악의 미학적 가치나 산업적인 성장의 계기를 만든 인물이라는 것보다는 시대적 전환기에 전위적인 실험을 했던 존재라는 데에 있다. 서태지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여기에 동의하지 않기는 어려울 것 같다.     


“서태지는 저항을 위해 자신의 결핍을 버리지 않았다. 저항의 의식이 결핍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이념을 과도하게 지향할 경우, 개인의 감수성을 소외시키는 경우가 많다. 제도적인 검열, 교육현장의 모순, 분단의 현실, 자유정신의 억압에 저항하는 방식에서 그는 자신의 감수성을 소외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결핍에서 비롯된, 끝없이 내면의 소수자로 남고자 하는 그의 감수성의 표현형식과 실험정신을 극대화함으로써 저항의 내용을 풍부하게 한 것이다(251쪽).”      


『서태지는 우리에게 무엇이었나』는 저자의 서태지에 대한 애정이 가득 느껴지는 책이다. 하지만 애정 없는 진지한 탐구는 쉽지 않다. 다소 과한 상찬이 포함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거슬리지 않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고 든 생각은 우리가 너무 쉽게 서태지를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2020년대에 1990년대 서태지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지 지금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는 종결될 수 없는 테마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중고로 밖에 구할 수 없는 『서태지는 우리에게 무엇이었나』의 개정판이 나오기를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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