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야쿠르트 스왈로스 시집』.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다. 겨울이 무척 싫다. 겨울이 싫어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야구가 끝나면 이제 겨울이 오겠구나 싶어 우울해진다. 모든 스포츠가 제각각 그렇겠지만 야구는 정말 독특한 스포츠다. 축구 팬이 아니라고 해서 축구를 보지 말란 법은 없겠지만 야구 팬이 아닌 사람이 야구를 보는 경우는 정말 드물 것이다. 경기 시간은 길고 경기 수는 많다. 각 팀이 KBO에서는 144경기를, MLB에서는 162경기를 치룬다. 거기에 플레이오프까지 치룬다. 야구는 그야말로 길고 긴 스포츠다.
야구를 좋아하고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하루키가 야구 팬 그것도 명문 구단이라고 하기 어려운 야쿠르트 스왈로스 팬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하루키처럼 성실하게 하루를 보내는 사람에게 야구는 일상의 리듬을 깨뜨리는 불청객일 수밖에 없다. 하루키는 자신의 약점을 야구라고 고백하기도 했다(하루키, 마쓰이에 마사시, 권남희, 유은정, 「하루키, 하루키를 말하다」, 『문학동네』, 2010년 여름호).
무라카미 하루키가 소설에 자신의 페르소나로 보이는 인물을 등장시키는 것은 드물지 않은 일이지만 본인이 직접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은 처음이었다. 『야쿠르트 스왈로스 시집』은 야구 팬 하루키가 야구를 어떠한 태도로 대해 왔는지에 관한 소설이다. 하루키가 야구를 바라보는 태도는 그가 인생을 바라보는 태도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야구처럼 느리고 긴 스포츠는 인생과 닮아있을 수밖에 없다.
하루키는 1968년에 산케이 야쿠르트 스왈로스의 전신인 산케이 아톰스의 팬이 되게 된다. 기적처럼 우승했던 해도 있지만 야쿠르트 스왈로스는 이기는 경기보다 지는 경기가 많은 팀이다. 한신 타이거스의 팬인 하루키의 아버지가 한신 타이거스가 진 날이면 심기가 불편해서 하루키가 조심했다는 일화는 야구 팬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명문 기아 타이거즈의 팬이다. 내가 어릴 때는 해태가 지는 것이 이상한 일에 가까웠다. 기아가 아닌 해태의 경기를 많이 보아 왔던 집안 어르신들은 아직도 타이거즈가 지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신다. 하지만 해태 타이거즈 보다 기아 타이거즈의 경기를 더 많이 본 나는 “그래 오늘도 또 졌네. 그럼 그렇지.”라는 마음으로 내일의 경기를 기다리게 되었다(물론, 이렇게 평정심을 유지하기 어려운 패배가 더 많다).
어떤 팀을 응원하건 간에 나는 야구가 승리보다는 패배와 닮아있는 스포츠라고 느껴지고 이것이 인생과 닮아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명문 구단이라고 해도 우승하는 해는 극히 드물다. 아무리 훌륭한 타자라고 해도 4할을 넘기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야구는 실패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를 학습해야 하는 스포츠처럼 느껴진다. 이것은 선수에게나 팬에게나 마찬가지 조건이다.
“다시 말해 ‘오늘도 또 졌네’라는 것이 세상이 이치로 여겨지도록 내 몸을 서서히 길들여갔다는 소리다. 잠수부가 오랫동안 주의깊게, 수압에 몸을 길들이듯이. 그렇다, 인생은 이기는 때보다 지는 때가 더 많다. 그리고 인생의 진정한 지혜는 ‘어떻게 상대를 이기는가’가 아니라 오히려 ‘어떻게 잘 지는가’ 하는 데서 나온다(131쪽).” 승리보다 패배가 많을 수밖에 없는 인생에서 승리보다 중요한 것은 어쩌면 패배를 잘 받아들이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지는 것보다야 이기는 쪽이 훨씬 좋다. 당연한 얘기다. 하지만 경기의 승패에 따라 시간의 가치나 무게가 달라지지는 않는다(147쪽).” 실패한 시즌은 있을 수 있어도 의미 없는 시즌이란 있을 수 없다. 실패한 인생은 있을 수 있지만 의미 없는 인생이란 있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슬슬 오늘밤의 경기가 시작될 참이다. 자, 팀이 이기기를 빌어보자. 그리고 동시에 (남몰래) 지는 것에 대비해보자(148쪽).” 2020 시즌이 끝난 지 채 한 달이 되지 않았지만 나는 또 다음 시즌을 기다린다. 이것은 다음 시즌에 예고 되어 있는 무수히 많은 패배를 기다리는 일과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