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경험 그리고 정체성

김난도 외. 『트렌드 코리아 2021』.

by 노창희

변화는 단절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변화는 흐름 속에서 나타난다.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의 핵심 키워드 역시 해마다 연속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2020년에는 ‘코로나 감염’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건이 있었다. 뉴노멀과 같은 새로운 변화를 예측하는 수사들이 쏟아졌지만 세상이 한순간에 바뀔 수는 없다.


우선 우리에게는 조속히 해결해야 할 중대한 과제가 있다. 바로 코로나 감염 확산을 막는 일이다. “금년의 부제는 ‘COWBOY HERO’로 정했다. 소를 직접 지칭하는 단어가 아니라서 약간 뜬금없기는 하지만, 날뛰는 야생의 소를 능숙하게 길들여내는 카우보이들처럼, 광우(狂牛)처럼 날뛰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잡아내면 좋겠다는 소망을 담았다(9쪽).” 소의 해인 신축년을 감안하여 『트렌드 코리아 2021』에서 부제로 삼은 것이 COWBOY HERO다. 어떠한 비유를 쓰든 간에 코로나 종식이 우선일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 우리가 직면해 있는 현실이다.

『트렌드 코리아 2021』에서 처음으로 제안한 키워드는 ‘브이노믹스’다. “브이노믹스(V-nomics)는, 바이러스(virus)의 V에서 출발한 단어로 “바이러스가 바꿔놓은, 그리고 바꾸게될 경제”라는 의미다(10쪽).” 지금은 바이러스가 바꿔놓은 경제 구조와 사회 변화에 대응하는 것이 선결과제일 수밖에 없다.


“코로나 사태로 바뀌는 것은 트렌드의 방향이 아니라 속도다(6쪽).” 현재까지의 변화는 기존에 진행되고 있었던 변화의 속도를 가속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비대면 상황이 늘어나면서 디지털 대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로 인해 집이라는 공간이 갖는 의미가 달라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두 번째 키워드인 ‘레이어드 홈’이 설명하는 것이다. 특히, 집에서 일과 여가 모두를 소화해 내야 하는 환경에서 집의 의미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재택근무, 원격교육과 관련된 논의는 디지털화가 진전되면서 이미 수년 전부터 나오던 얘기다. 코로나로 인해 전환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것이다. 네 번째 키워드인 ‘거침없이 피보팅’이 필요한 이유이다. ‘피보팅(pivoting)’이란 “기업이 자사가 보유하고 있는 자산을 최대한 활용해 소비자의 변화무쌍한 니즈에 맞추며 새로운 방향으로 사업을 신속하게 전환하는 전략(224-225쪽)”을 의미한다.


가속화의 중요한 방향성은 ‘소유’에서 ‘경험’으로 삶의 지향이 바뀌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경험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키워드들이 ‘자본주의 키즈’, ‘롤코라이프’, ‘#오하운, 오늘하루운동’,‘N차 신상’, ‘CX 유니버스’, ‘휴먼터치’ 등이다. 갈수록 자신이 원하는 경험을 위해 솔직하게 소비하고 자본에 대한 욕망을 인정하게 된다(‘자본주의 키즈’). 시대의 변화 민감하게 반응하고 짧은 유행을 챙겨서 즐긴다(‘롤코라이프’). 코로나로 인해 운동을 하기 어려워졌지만 오히려 운동에 대한 욕구는 높아지고 있다(‘#오하운, 오늘하루운동’). 새로운 것을 사서 가지고 있기보다는 보다 다양한 상품을 중고로 즐긴다(‘N차 신상’). 단순한 목적으로 물건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구입부터 재구매까지 모든 경험에 의미를 부여한다(‘CX 유니버스’).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 상황이 늘어나면서 오히려 대인 교류에 대한 욕구가 증가하고 있다(‘휴먼터치’).


“‘누가 더 많이 소유하고 있는가’가 아니라 ‘누가 더 많은 경험을 해보았는가’가 삶의 만족도를 평가하는 새로운 척도가 되고 있다(60쪽).” 소유에서 경험으로 지향하는 가치가 변화하고 있는 것은 ‘소유’ 자체가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고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자신의 사회적 위치에 대한 불안감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다양한 경험은 이러한 불안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코로나로 인해 소비자가 느끼는 불안감은 더욱 커질 것이다. 이러한 불안을 소비를 통해 해소하려는 경향성은 더욱 강하게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사실 상품이 기호적인 의미를 갖는 현대 소비 사회에서 우리는 필요에 의한 상품의 ‘기능’만을 소비하지 않으며,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는 ‘의미’를 구매한다는 점은 여러 학자에 의해 지적돼왔다(370쪽).” 최소한 정체성의 일부는 소비가 규정한다는 것은 현대사회에서 새로운 현상이 아니지만 이러한 경향은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복잡다단한 현대사회에서 소비라는 것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또한, 매체 환경의 변화로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소셜 미디어를 통해 다중화된 정체성을 지니게 된다. 『트렌드 코리아 2021』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레이블링 게임’이란 용어로 소개하고 있다. “레이블링 게임이란 “자기 정체성을 특정화된 유형으로 딱지(레이블)를 붙인 뒤, 해당 유형의 라이프스타일을 동조・추종함으로써 정체성의 불확실성을 해소하려는 게임화된 노력”을 말한다. 말하자면 멀티 페르소나 시대의 유동적 정체성을 고형화하기 위한 스스로의 자구책인 셈이다(360쪽).”


소비자가 느끼는 불안은 소비를 통한 경험으로 나타나고 그것이 궁극적으로 한 개인의 정체성으로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그 정체성은 고정되어 있지 않을 뿐 아니라 단수일 수도 없다. “우리는 ‘나’라는 존재에 대한 확신을 느끼고 싶어 하지만, 그것을 자기모색으로부터 찾는 것이 아니라, 어떤 객관적 지표 혹은 타인의 인정으로부터 얻고 싶어 한다. 결국 레이블링 게임은 자신에 대한 성찰이 어려워지면서 데이터・테스트・비유 등을 통해 나를 정의하고자 하는 사회적 경향성의 표현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372쪽).”


코로나로 인해 소비자가 더욱 불안을 느끼고 그로 인해 소비를 통해 다양한 경험을 추구하고자 하는 경향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형성된 다양한 정체성을 어떠한 관점에서 볼지가 2021년에 등장할 다양한 트렌드를 조망하는데 있어 중요한 지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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