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을 위한 삶의 태도

J. D. 벤스. 『힐빌리의 노래』.

by 노창희

J. D. 벤스의 『힐빌리의 노래』는 저자가 자신의 삶을 기록한 논픽션이다. J. D. 벤스가 이 책을 쓴 이유는 영웅적인 자신의 삶을 알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조적인 한계로 인해 불행한 삶에서 탈출하기 어려운 이들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성공한 자신의 사례를 알려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님을 자신과 같이 불우한 환경에서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말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래서 J. D. 벤스는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책을 쓰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히고 있다.

저자이자 이 책과 동명 영화의 주인공인 J. D. 벤스는 러스트벨트에 포함되어 있는 오하이오의 철강 도시에서 성장했다. J. D. 벤스에 따르면 자신이 성장한 곳은 “일자리와 희망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큰 폭으로 사라져가는(10쪽)” 동네였다. 『힐빌리의 노래』는 <뷰티풀 마인드>를 연출한 론하워드 감독에 의해 같은 제목으로 영화화 되었다. 글렌 클로즈가 윤여정과 함께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바 있다. 이 동네는 경제적으로 궁핍할 뿐 아니라 부모들의 이혼도 드문 일이 아니다. J. D. 벤스는 수많은 아버지와 생활을 이어 나가다가 결국 책에서 ‘할모’라고 불리는 외조모와 함께 중, 고등학교 시절을 보낸다.


J. D. 벤스 주변에는 알콜 중독자와 흡연자는 말할 것도 없고 마약 중독자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J. D. 벤스의 외조부는 알콜 중독이었고, 외조모는 체인 스모커였다. 결정적으로 어머니가 마약 중독자였다. 어머니의 마약 중독은 J. D. 벤스가 성공한 이후에도 그를 괴롭혔다.


『힐빌리의 노래』는 외조부와 외조모 특히, 외조모에 대한 헌사다. 외조부는 죽기 전까지 어머니와 손주들을 위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았다. 외조모는 자신의 딸이 더이상 J. D. 벤스를 정상적으로 양육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자 경제적 자원을 포함한 자신의 모든 자원을 투입하여 손주를 헌신적으로 양육한다.


『힐빌리의 노래』는 러스트벨트에 있는 백인들이 왜 몰락하고 있는지 꼼꼼하게 다루고 있는 인류학적 연구이면서 동시에 사회학적 보고서이기도 하다. 예일대 로스쿨에서 글 쓰는 법을 배운 J. D. 벤스의 역량이 잘 드러나 있는 책이다. 디지털 대전환과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초래한 경제적 변화는 제조업 기반의 회사들이 무너지면서 여기서 노동을 하던 백인들의 삶을 경계선 바깥으로 밀어내고 있다. 역시 동명의 영화로 만들어진 바 있는 『노매드랜드』 역시 서브프라임 모기지 이후 몰락한 제조업 기업에서 노동하던 백인들의 얘기를 다루고 있다. 경제위기 이후 양극화 심화는 가장 첨예한 사회문제라는 확인할 수 있는 지점이다.


J. D. 벤스는 희망을 잃어 버린 러스트벨트 백인들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결론적으로 미국 사회의 핵심 조직과 우리를 하나로 엮을 만한 고리가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우리 동네 출신의 아군이 턱없이 적게 배치된 전쟁’과 ‘아메리칸 드림의 가장 기본 조건인 안정적 임금 제공에 실패한 경제 전쟁’이라는 두 전쟁의 전장에 갇힌 기분이었고, 도저히 거기서 이기고 나올 수 없을 것 같아 보였다(298쪽).”


J. D. 벤스는 할모의 헌신으로 무사히 대학에 입학하고 군대에 자원 입대한다. 그리고 대학을 마친 후 예일 대 로스쿨에 진학해서 폐허로 방치될 수 있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구원해 낸다. 예일대 로스쿨에서 만난 우샤와 만나 결혼해서 행복한 삶을 꾸려 나가고 있다. 유복한 가정에서 성장한 우샤는 J. D. 벤스의 로스쿨 생활에 큰 도움을 준다. J. D. 벤스는 자신의 성공이 자신의 노력만이 아니라 두 조부모, 우샤와의 만남 등 여러 가지 행운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얘기한다.


『힐빌리의 노래』라는 텍스트가 갖는 결함이 아니라 『힐빌리의 노래』를 읽고 느껴지는 불편함은 바로 이 부분이다. 근본적인 대안은 찾기 어렵고 벼랑 끝에 내몰린 삶에서 자신을 구해내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과 더불어 운까지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J. D. 벤스가 나오기는 하겠지만 그것은 너무도 어렵다는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힐빌리의 노래』가 주는 또 다른 교훈은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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