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미.『자본주의 키즈의 반자본주의적 분투기』.
‘20대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MZ 세대의 니즈를 어떻게 파악해야 하는가?’ 앞의 질문들은 나를 포함한 40대 이상 꼰대들 대부분의 공통 관심사다. 나를 포함한 꼰대들이 왜 위와 같은 질문들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일까? 20대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싶어서? 사회에 대한 걱정 때문에.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자신의 진심을 진정으로 성찰해 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험한 표현을 쓰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았다). 20대와 MZ 세대를 이해하고자 하는 이유 중 99%는 자신의 이해관계와 관련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방 보궐 선거 이후 20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는 정치권의 화두가 되었다. 정부도 20대를 위한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대부분 조롱의 대상이 될 뿐 20대의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나는 기성세대가 20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를 20대를 ‘대상화’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피하고자 한 것은 ‘대상화’다. ‘우리’의 범주 밖의 사람들이 ‘우리’를 이러쿵저러쿵 비평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반박으로 이 책을 쓸 용기를 냈기 때문이다(10쪽).”
89년생 한국경제 기자인 이혜미가 쓴 『자본주의 키즈의 반자본주의적 분투기』는 내가 읽은 세대론 관련 책 중 가장 재밌게 읽은 책이다(가장 좋은 책이라는 표현을 쓰려다가 참았다. 가장 좋은 책이 아니라는 것은 아니고, 내가 세대론에 관해 가장 좋다는 표현을 쓸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IMF 직후 대학에 입학한 나를 포함해서 지금의 20대를 군집화하기 어려운 이유는 우리에게는 서사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20대는 균일한 집단으로 묶는‘투쟁의 기억’도 ‘세대적 서사’도 ‘집단적 이상향’도 없기 때문이다(256쪽).” 20대를 집단으로 호출해서 이해해 보려는 시도 자체가 무의미할 수 있는 이유다. 이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금 그들이 어떤 일에 관심이 있는지 헤아려 봐야 한다. “20대는 기본적으로 ‘이슈 보터’다(259쪽).”
대한민국 사회는 항시 전쟁터였고, 사회적 불안과 양극화는 더욱 심해지고 있다. 이 와중에 20대에서 30대 초중반까지는 기성세대들이 걷어찬 사다리로 인해 벼랑 끝에 몰려 있다. 코로나는 이들의 상황을 더욱 버겁게 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가 젊은 층을 포함한 국민 전체가 상시 전투 중인 대한민국 사회에 쉼표를 찍어 준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어쩌면 정부 방역 조치가 아닌 삶의 양식으로서 ‘사회적 거리두기’는 유례없는 전염병 국면에서 나 자신을 들여다보며 앞으로도 실천할 통찰일지 모르겠다(41쪽).”
“나는 오히려 코로나19가 기폭제가 되어 자신의 내면을 중시하는 새로운 삶의 패러다임을 제시했고, 그에 부합하는 명상 라이프스타일이 확산된 것이라는 데 무게를 싣고 싶다(68쪽).” 코로나를 계기로 오프라인 관계를 줄여나가며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 나가는 필자의 경험담을 읽으며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년기에 친구가 많지 않았던 편이고 외향적이기보다는 내향적인 편에 가까웠던 나는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약속이 많은 사람이 되었다. 매번의 만남이 모두 즐겁지 않은 것은 물론이지만 사람을 만나는 것도 일종의 관성이라 코로나 이후에도 예전의 관성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 나의 상황이다.
현금의 가치는 계속 하락하고 있다. 부동산과 같은 자산을 소유하지 않은 이들이 주식이나 코인과 같은 투자에 매달리 수밖에 없는 이유다. “‘레버리지는 축복’이라고 찬양하는 자본주의 키즈가 내면화한 경제관념이다(110쪽).”나도 주식 투자를 하게 될까? 코인 때문에 잠을 설치는 대열에 합류하게 될까? 90년대 증권맨으로 정점을 찍었다가 IMF 때 나락으로 떨어진 이후 환갑을 채우지 못하고 돌아가신 아버지 때문에 증권과 같은 투자에 회의적인 나조차 과연 언제까지 증권이나 코인을 하지 않고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인 세상이다. 코인 광풍으로 위험을 감수하고 투자하는 20대들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기 전에 왜 그들이 위험을 부담하고 투자를 해야 하는지 물어야 한다. 그리고 이 사회를 이렇게 만든 세대는 누구인지부터 물어야 하지 않을까?
이혜미 기자는 주말에는 기자로서 쓰는 글이 아닌 다른 글을 쓴다고 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평일에는 써야만 하는 보고서 위주로 글쓰기를 하지만 주말에는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 ‘작가’라는 부캐를 새로운 정체성으로 삼기 위해서다. “내가 생각하는 부캐란 그런 것이다. 꾸역꾸역 일상을 유지해야 하는 그런 쳇바퀴 속에서도 나를 숨 쉬게 하는 탈출구. 그리하여 내가 이 세상 속 하나의 볼트와 너트 같은 소모품이 아니라, 존재하고 또 존재하는 유기물임을 확인하는 과정(162쪽).”
이데올로기나 정의와 같은 거대 담론으로 무장하지 않고 자신의 일상을 지켜내려는 지금의 20대 혹은 30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지금의 나를 성찰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투쟁력’이 중요했던 시대가 있었다면, 지금을 살아내는 우리에게 중요한 건 ‘일상력’이다(251쪽).”『자본주의 키즈의 반자본주의적 분투기』를 읽으면서 문득문득 떠오른 질문은 과연 ‘나는 제대로 살고 있는가?’였다.
나는 내 방식대로 잘 살아가야겠지만 나와는 다른 경험을 한 세대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멈추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된다. 누구에게나 망설이지 않고 선물할 수 있는 책이 하나 더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