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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창희 Feb 06. 2021

삶의 의미를 위한 마지막 어휘를 찾아서

피트 닥터. <소울>. 리처드 로티.『우연성, 아이러니, 연대』.

평생을 재즈 피아니스트로 살고 싶어 했던 조 가드너는 생계를 위해 학생들에게 음악을 가르친다. 이미 중년에 접어든 그에게 갑작스러운 행운 두 가지가 갑자기 찾아온다. 한 가지는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던 가드너에게 정규직 전환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고, 다른 하나는 드디어 꿈에 그리던 무대에 올라설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문제는 두 가지를 병행하기 어렵다는 것. 정규직 전환 소식을 어머니에게 알릴 때 조 가드너의 표정은 그리 개운치 않다. 정규직을 받아들이게 되면 뮤지션으로 살아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무대에 올라설 기회를 접한 것은 정규직 전환 소식 이후였다. 당연히 뮤지션의 기회를 잡기로 한 가드너는 너무 기쁜 나머지 거리를 맹렬히 거리를 질주하다가 맨홀에 빠지고 만다. 스포일러 때문이 아니라 이 이후에 <소울>이 보여주는 마법을 글로 설명할 자신이 없어 <소울>이 전하는 메시지만을 다루고자 한다. 가드너는 우여곡절 끝에 뮤지션으로 무대에 오르지만 꿈을 성취한 이후에 몰려드는 허탈함을 감당할 수가 없다. 가드너는 인생에서 자신이 지향하는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결코 삶의 모든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결국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그야말로 삶의 의미라는 것을 알게 된다.        


<소울>이 전하는 메시지는 너무 뻔한 거 아니냐고? 그리고 이토록 살아가기 어려운 시대에 살아있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말하는 건 너무 무책임한 거 아니냐고? <소울>을 보시지 않은 분이 이렇게 묻는다면 일단 보고 오시라는 말밖에는 할 수가 없다. 나는 서사가 제공할 수 있는 최상의 경지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명제에 대해 서사를 통해 설득당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소울>은 그 일을 해낸다. <소울>은 삶이 가치 있는 것이라고 강요하지 않으면서 삶을 긍정하게 만드는 애니메이션만이 할 수 있는 마법을 보여준다.      


<소울> 자체는 서사로서 완결성을 가지고 있고, 그 자체로 충분한 ‘무언가’를 관객들에게 선사하지만 삶 그 자체에 대한 고민으로 넘어오면 <소울>이 주는 메시지만으로는 채워지지 않은 부분이 있다. 삶이 목표나 성취에 저당 잡히지 않은 채 삶 그 자체로서 가치를 가지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나는 로처드 로티가 『우연성, 아이러니, 연대』에서 얘기하는 “마지막 어휘”(final vocabulary)라는 개념이 단서를 제공해 준다고 생각한다.       

로티는 넓게 보면 데카르트, 시기를 조금 좁혀서 보면 칸트 이후 철학자들이 얘기하는 언어 밖에 존재하는 진리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생각에 반대한다. “진리는 저 바깥에 존재할 수 없다. 즉 인간의 정신과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왜냐하면 문장들이 인간의 정신과 독립적으로 저 바깥에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36-37쪽).” 로티가 이상적인 자아라고 여기는 ‘자유주의 아이러니스트’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면서 자신만의 어휘를 창안해 가는 존재들이다.      


“모든 사람은 그들의 행위, 그들의 신념, 그들의 인생을 정당화하기 위해 채용하는 일련의 낱말들(words)을 갖고 있다. 그것들은 친구들에 대한 칭찬, 적들에 대한 욕설, 장기적인 프로젝트, 가장 심오한 자기의심, 그리고 가장 고결한 희망을 담는 낱말들이다. 그것들은 우리가 때로는 앞으로 내다보면서 때로는 뒤를 돌아보면서 우리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말하는 낱말들이다. 나는 그러한 낱말들을 “마지막 어휘”(final vocabulary)라고 부르겠다(163쪽).”  <소울>을 보고 로티의 『우연성, 아이러니, 연대』까지 읽고 나니 삶에서 지향해야 할 태도에 관한 중요한 접근 방식을 알게 된 것만 같다. 물론, 그 접근 방식을 실천해 나가는 일은 어렵다. 삶을 긍정하기 위해서라도 삶이 버거운 것이라는 불편한 진실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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