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진. 「3구역, 1구역」. 『너라는 생활』.
철학적인 고민이 아니더라도 ‘타자(他者)’를 이해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중요한 과제이다. 혼자 살 수 있는 개인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타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복합적인 맥락을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문제는 관계를 맺음에 있어 성찰적으로 맥락을 고려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이 어려운 일을 해내야 하는 것이 문학이 놓여 있는 자리다.
김혜진의 「3구역, 1구역」은 알아감의 과정에서 개인이 처한 계급적 위치가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고민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철거 예정에 있는 3구역 세입자인 ‘나’는 1구역에서 공인중개업을 하는 ‘너’를 반려묘 태비를 통해 알게 된다. 너는 반려묘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고, 역시 반려묘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같이 태비를 함께 돌봐 주자고 제안한다.
태비에 관해 대화를 나눌 때 나는 네가 공인중개업을 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고, 부동산 투자를 통해 상당한 수익을 거두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으며, 재개발에 비협조적인 사람들을 비판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여기서 열거된 사실들 이면에 놓여 있는 불편한 진실은 ‘너’와 ‘나’ 사이에는 3구역과 1구역 사이에 놓여 있는 만큼의 계급적 격차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밤에 내가 실감한 건 너와의 간극이었고 격차였다(31쪽).”
한 인간이 사회적으로 살아 나감에 있어 계급적 격차는 결정적인 변수이지만 그것만으로 특정인의 모든 것이 설명되지는 않는다. “너는 길고양이를 끔찍이 생각하는 사람이고 요령 있게 집을 사고팔며 차익을 남길 줄 아는 사람이고 내게 아무런 경계심 없이 사적인 이야기를 늘어놓는 사람이고, 누구나 관심 있어 하고 궁금해할 정보를 대가 없이 공유하는 사람이고 낡고 오래된 것들은 말끔히 부수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고, 몇 날 며칠씩 오지 않는 고양이를 기다리는 사람이고(35쪽).” 너와 나는 계급적으로 엄연히 다른 사람이지만 반려묘를 보고는 똑같이 연민을 느낀다. 이 계급적인 긴장과 공통점은 너와 내가 과연 앞으로도 잘 지낼 수 있을지 의문을 남긴다.
대한민국에서 공간에 대한 점유권 문제만큼 첨예한 것도 드물다. 부동산을 놓고 벌어진 짧게 보면 최근 몇 년, 길게 보면 대한민국 수립 이후에 발생한 많은 일은 ‘공간’이라는 문제가 회피하기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문학도 이 문제에 대해 외면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3구역, 1구역」이 보여주는 나와 너의 거리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3구역, 1구역」이 특징적인 것은 이미 각별한 관계가 아닌 앞으로 서로 알아가야 할 사이에 놓여 있는 계급적 격차가 공간 문제로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는 대한민국에서 전혀 새로울 것이 없지만 ‘너’라는 인칭으로 호명된 존재가 나보다 공간 점유권에서 우월한 위치에 놓여 있다는 것에 대해 문학적으로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를 「3구역, 1구역」은 우리에게 환기한다. 잠재적으로 공간 점유권에서 우월한 지위에 놓여 있는 자는 그렇지 못한 나에게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
반려묘 태비의 존재는 「3구역, 1구역」에서 단순히 반려묘가 아니라 계급적으로 우월한 너와 계급적으로 낮은 위치에 처해 있는 나가 공동으로 돌봄을 수행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라는 의문을 갖게 만든다. 이 공동의 돌봄 가능성은 너와 내가 관계를 계속 이어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중요한 이유가 될 것이다. 작가는 이에 대해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 하긴 명확한 답을 주는 것은 문학의 자리라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너에게 이질감을 느끼는 나지만 아직은 남아 있는 가능성 때문에 차마 너를 외면하지 못한다. “그러나 몇 걸음 앞서 걷던 네가 그렇게 물었을 땐 나는 또다시 이끌리듯 그러겠다고 대답하며 걸음을 빨리했다(3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