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차와 진실

조해진.「눈 속의 사람」.『환한 숨』.

by 노창희

신을 믿는 인간이라면 신에게서 구원을 찾고자 하겠지만 신의 존재를 인정하기는 하더라도 신이 세계에 널려 있는 고통을 직접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지 않는 인간이라면 다른 방식으로 구원받는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다. 신과 구원으로부터 이 글을 시작하는 이유는 『환한 숨』에 실려 있는 다른 단편 「숨결보다 뜨거운」에 “신은 인간의 고통에 전혀 개입하지 않는, 아니 그것이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는 존재에 가까웠(234쪽)”다는 문장이 있기 때문이다.


고통받는 인간이라면 그에게 당면한 것은 현재와 현재를 지탱해 줄 수 있는 물리적 기반이겠지만 과거에 의해 구성된 현재에 실존해야 하는 인간은 현재보다도 과거 때문에 고통받는 것이 부지기수다. 과거를 회상할 때 흔히 끼어드는 의혹은 내가 그 사람과 어떠한 형태로든 인연을 이어나갔더라면 내 삶의 모습은 어떻게 달라 졌을까하는 것이다. 아니 달라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불필요한 가정이다. 부질없는 짓이긴 하나 피해가기도 어려운 의혹이고 그 질문이 무언가를 남긴다면 의미가 없는 일도 아니다. 어떤 소설은 이 일을 대신 해준다. 자신의 경험과 유사한 이야기를 들려줘서가 아니라 과거를 반추하는 일이 현재의 공허를 다시금 확인해 주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하더라도 그 과거를 부정해서도 안 되고 부정할 수도 없다는 진실을 소설이 알려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기홍과 여진은 7년 전 육이오와 관련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 대한 인터뷰를 중심으로 책을 만드는 구술팀와이에서 만나 같이 일 한 적이 있다. 거의 백수나 다름없던 기홍과 대학원에서 지도교수와의 관계가 좋지 않아 실질적으로 학업을 중단했던 여진이나 7년 전은 소속은 물론 의지할 곳이 없는 상황이었다.


「눈 속의 사람」은 과거의 일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 묻는다. 여진은 자신이 기홍과 같이 인터뷰했던 최일남의 부고 소식을 듣고 기홍과 같이 가자고 한다. 최일남의 죽음이 둘을 7년 만에 재회하게 한 것이다. 최일남에게 육이오는 당연히 끔찍한 기억으로 남아 있지만 인명을 구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최일남에게 마냥 악몽 같은 기억으로만 남아 있지 않다. 아무리 끔찍한 세월이라도 그 세월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남긴다.


여진은 구술팀와이에 의해 발간된 책을 기반으로 해서 극화된 연극을 보게 된다. 최일남의 구술이 기반이 되긴 했지만 구술에 의거하여 만들어진 책은 완벽한 재현이 되기 어렵다. “증언은 객관적일 수 없다. 증언은 증언자의 기억 속에서 선택된 언어이고 증언자는 역사의 현장에서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닌 구경꾼의 위치에 있으려 할 뿐, 자신의 과오나 잘못에 대해서는 날카롭게 의식하지 못하며 때로는 완전히 망각하기도 한다(180쪽).”


기홍과 여진은 7년 여수에 마지막 구술을 마치고 연인이 될 뻔한 기회를 갖게 되지만 끝내 연인이 되는 것에는 실패한다. 그리고 기홍은 여진을 두고 먼저 도망치듯 나와 버린다. “우리는 왜 거기까지였을까, 그런 의문이 나의 화두인 적이 있었다. 사랑을 하기에 좋은 시절이 아니긴 했다. 직장과 학교는 우리의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했고 한시적으로 참여한 구술 작업도 우리를 웃게 해주지 못했다. 그 전쟁에서 살아남은 모든 사람들이 조금은 뻔뻔하다는 생각은 이 세상이 오물 위에 세워진, 부서지기 쉬운 구조물이라는 환멸로 이어질 뿐이었다(198쪽).”


눈 때문에 결국 서울에 가지 못하고 상갓집에 발목이 잡힌 그 날도 둘 사이에 특별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물론, 여진은 이미 아이까지 있는 상황. 최일남의 죽음으로 인한 기홍과 여진의 해후는 결국 이루어지지 못한 둘 사이의 엇갈린 인연을 확인하는 제의 이상 아무것도 아니었을까? 지나간 시간은 “어리석음에 대한 형벌(187쪽)”에 불과한 것일까? 「눈 속의 사람」은 최일남의 육이오에 대한 기억을 통해 기홍과 여진의 엇갈린 인연이 그저 의미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말해준다.


문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과거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녀와 연관되기만 하면 내 감정이나 생각은 이렇게 매번 뒤늦었다(189쪽).” 기홍의 정서는 회한에 가깝고 결국 자신이 어리석었다는 성찰은 뒤늦게나마 자신이 경험한 시간의 진실을 알게 해준다. 그 깨달음이 엇갈린 인연에 대한 아쉬움 보다는 타인에 대한 이해로 이어질 때 지나간 시간에 대한 진정한 애도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지. “그러나 그녀가 저토록 무심히 쌓인 눈 속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가기 위해 움직이기 전까지는 이곳에 서서 그녀를 좀더 지켜보고 싶었다(2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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