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까지 가기 어려운 세대의 판타지 리얼리즘

장류진.『달까지 가자』.

by 노창희

나는 코인과 관련해서 ‘가상화폐’가 맞는 표현인지 ‘암호화폐’가 맞는 표현인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가상화폐라고 누군가 얘기했을 때 가상화폐가 아니라 암호화폐라고 맞서는 이들의 심정은 알 거 같다. 코인을 하는 이들은 누구나 돈을 벌고 싶어서 한다. 실제로 코인으로 떼돈을 벌어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것이 미담으로 회자되기도 한다. 코인으로 돈을 벌고 싶어 하는 이들 중 일부가 가상화폐라는 말을 혐오하는 이유는 돈을 벌어주는 코인 앞에 놓인 가상이라는 어휘가 주는 비실재성이 싫을 것이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증권을 포함한 금융이 갖는 가상성을 싫어했다. 그것은 내 개인적인 성향 때문이기도 하고 개인적인 경험 때문이기도 하며, 양자의 시너지 때문이기도 하다. 상대적으로 유복하게 자란 영향 때문이기는 하겠지만 나는 돈을 가지고 아등바등해 본 적이 없다. 다행히도 흙수저로 태어나지 않은 탓이다. 하지만 IMF 때 주식에 올인했다가 실패해서 다시 재기 하지 못한 아버지로 인해 굴곡이라는 것은 경험해 봤다. 공공기관에서 오랫동안 착실히 근무하신 어머니 덕분에 우리 집은 그럭저럭 환란을 헤쳐 나올 수 있었고, 나도 40이 넘어서까지 한 직장을 10년 이상 다니며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아버지는 한 번의 결정적 실패를 극복하지 못했다. 환갑을 맞이하기 직전에 삶을 마감한 그의 인생에서 주식이 안겨준 치명타는 너무도 결정적이었다.


찬란했던 80년대와 90년대에 증권맨이었던 아버지의 얼굴은 항상 보기 어려웠고, 결국 주식으로 인한 빚만을 유산으로 남긴 그의 생애는 내게 ‘레버리지’를 통한 자산 획득 같은 것을 쳐다보지도 않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주식이나 코인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게 되는 이유는 양극화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당대 사회에서 환경오염까지 일으키는 악화로 보이는 가상의 그것이 유일한 동아줄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앞으로도 코인이나 주식 같은 것을 내가 할 리 없겠지만 『달까지 가자』를 읽는 동안만큼은 나도 코인으로 돈을 벌고 싶다는 욕망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장류진의 소설과 『달까지 가자』가 가진 최대의 장점이다. 좋은 서사의 가장 원초적인 장점은 몰입이 잘 되며, 등장인물의 입장이 되게끔 하는 것인데 『달까지 가자』는 지금까지 보여준 장류진의 장기가 십분 발휘된 작품이다. 이제 장류진은 오른손에는 『달까지 가자』라는 장편을 왼손에는 『일의 기쁨과 슬픔』을 쥔 스타급 작가가 되었다. 장류진이 양손으로 책을 들 수 없을 날이 곧 올 터인데 나는 이제 그 작품 역시 재밌고 유익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장류진의 소설에 대해서만큼은 재밌고 유익하다는 상투적인 표현을 고수하고 싶다. 당대에 좋은 작품이라고 평가받는 작품들은 시대정신과 깊은 연관을 맺는다. 작품이 갖는 미학적 가치를 떠나 시대정신을 재현하면서도 재밌는 소설을 찾는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데 아마도 나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여기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장류진의 소설을 꼽을 것이다. 정세랑이 “장류진을 따라 하고 싶은 사람은 많겠지만 아무도 따라하지 못할 것”이라고 추천사에 쓴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시대정신을 보여주면서 엄청난 흡인력을 지닌 소설을 찾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달까지 가자』는 흙수저인 다해, 은상, 지송의 이더리움 투자 성공기다. 다해, 은상, 지송은 우리나라 대기업의 전형적인 단점을 모아놓은 듯한 마론제과에서 공채가 아닌 경력직으로 애매하게 입사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비슷한 시기에 입사했으며, 공채 입사 동기가 없어서 입사 동기처럼 친하게 지낸다.

이 셋의 또다른 공통점은 부모님의 도움을 받기는커녕 도움을 줘야 하는 흙수저들이라는 것이다. 투자에 관심이 많은 은상은 다해와 지송에게 이더리움을 권하게 되고 셋 다 성공을 거둔다는 것이 『달까지 가자』의 스토리 전부다. 이 간단한 얘기를 350페이지에 걸쳐서 하고 있는데 지루하기는커녕 술술 읽힌다.

가상의 기업인 마론제과는 가상화폐 맞은편에 놓여 있는 진부한 ‘실재’처럼 보인다. 공채, 경력직을 구분하고 라인을 따지고 팀장은 팀원들을 혹사시켜 성과를 내려한다. 이런 실재 속에서 경계로 내몰린 청춘들은 가상의 세계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가상의 세계 역시 정글일 테지만 소설에서만큼은 이들에게 승리를 안겨주고 싶은 것은 작가의 선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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