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지 않음을 돌아보는 안녕이라도 건네야 할 때

김금희.「우리가 가능했던 여름」

by 노창희

세 달 후면 브런치에 소설 리뷰를 올리기 시작한 지 만 2년이 된다. 새삼스레 이 얘기를 꺼낸 이유는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그 기간 동안 내가 가장 많은 리뷰를 쓴 작가가 김금희인 거 같아서다. 언제까지 내가 소설 리뷰를 쓰게 될지 모르겠으나 어쩌면 앞으로도 가장 많은 리뷰를 쓰게 될 작가가 김금희가 될지도 모르겠다.


김금희의 소설이 정치적이라고 한다면 김금희는 정치의 실패를 다룬다. 김금희의 소설이 유독 2000년대 초반을 무대로 삼는 이유는 아마도 작가 자신이 가장 많은 생장을 거듭했던 20대였기 때문일 것이나 그때의 우리가 정치에 대해 기대했고 그 기대에 미만했던 정치의 과정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황우석 사태에 대해 떠올리게 하는 「우리가 가능했던 여름」은 ‘우리’가 이제 더 이상 ‘우리’이기 어려운 시기에 그래도 안녕을 건네야 한다고 말하는 소설이다. 나는 이 메시지가 다분히 정치적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이전에 윤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삼수생인 주미는 비호감이라고 생각했던 동창 장의사(의사가 장래 희망이어서 붙은 별명이다)와 프랜차이즈 토스트 집에서 아침마다 마주치게 된다. 삼수생 처지에 의대생을 날마다 보는 것이 불편했던 나는 장의사에게 그 집에 오지 않으면 안 되냐고 부탁하지만 장의사 역시 의대까지 등교하기 어려운 정신 상태에서 등교하는 척 시간을 보내는 곳이라 나의 부탁을 들어주기 어려운 입장이다. 김금희의 다른 많은 소설과 마찬가지로 둘은 연인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지만 한 시절을 보내는데 필요한 감정적인 위안을 주고받는다. 주미는 오히려 장의사에게 부당한 행동을 했을 것이라 짐작되는 김조교와 잠깐이나마 연인이 되게 되는데 그들 간의 짧은 연애는 주미에게 큰 상처를 남긴다. 김조교 형에 대해 제대로 얘기하지 못해 미안했다는 장의사의 사과는 오히려 주미에게 큰 ‘훼손’으로 남게 된다.

장의사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되고, 학교에 자리 잡은 마흔이 되어 가는 나는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던 당시를 기적인냥 돌아본다. “마흔이 다 된 지금의 나는 손으로 꼽을 정도의 패턴으로 일상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삶의 어느 모서리를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싶었지만, 어쩌면 그런 감정의 분화는 오직 생장의 시절에만 가능하다는 생각도 들었다(25쪽).” 나는 이십 대 때 다양한 감정의 분화를 할 수 있는 마음의 결을 지니고 있었을까? 40대 중반을 향해 가는 처지에 생장의 시기였던 20대 때 내 마음의 무늬를 다시 헤아리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음을 아프게 체감한다. 생장의 시기를 돌아보는 마음은 생장이 어려워진 시기에도 아직 생장을 포기하고 싶지 않음이리라.


결혼을 하고 학위를 받고 학교에 자리 잡은 미주의 삶은 이제 안정의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보이지만 미주의 삶은 결코 ‘안녕’해 보이지 않는다. 기득권에 가까워진 미주는 힘이 없다고 얘기하는 학생의 말을 희망이 없다고 단정해 들을 만큼 생장이 불가능해 보인다. 힘이 없다는 학생의 말을 희망이 없다고 듣고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쓴 것은 무엇보다도 현재의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체념하는 것보다 부끄러운 것은 없다는 작가의 의지 표명이었을 것이다. 또한, 한국 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김승옥의 저 표현 자신이 이제 어쩔 수 없는 속물이 되어 버렸다는 것을 자각할 때 나오는 “심한 부끄러움”이라는 표현보다 강력한 어휘를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안녕,이라는 말이야말로 누군가에게 반복해서 물을 수 있고 그렇게 물어야 하는 일이라는 것, 비록 이제는 맞은편에 앉아 있지 않은 사람에게도 물을 수 있는 일이라는 것, 그것이 일산의 여름을 지켜내는 일이라는 걸(48쪽).” 주미가 장의사와 함께 했던 일산의 여름으로는 돌아갈 수도 장의사와 함께 추억하는 것도 이제는 불가능한 일이 되어 버렸다. 주미는 이제 기득권에 가까운 속물이 되어 버렸고, 과거를 떠올리는 일도 버겁다. 하지만 아직 심한 부끄러움을 느낄만한 윤리는 남아 있다. 개인적으로 나답게 사는 일에 실패하고 큰 정치든 작은 장치든 연일 실망을 안겨줄지라도 우리가 계속해 나가야 하는 일은 안부를 묻는 일이다. 나는 나답게 잘살고 있는지. 이미 세상 없는 너에게도 그때를 잊지 않겠다고 안부를 건네야 하는 것이다. 서로의 얼굴을 보는 것이 어려운 시기를 통과하고 있는 그래서 나의 실패와 우리의 실패가 더욱 아프게 느껴지는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나에게 너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안부를 묻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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