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희.「너무 한낮의 연애」
김금희의 소설을 언제 처음 읽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2016년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서 「너무 한낮의 연애」를 읽었을 때의 감상은 꽤 뚜렷하게 남아 있다. 그것은 좋게 얘기하면 신선한 당혹감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대체 이건 무슨 소설인가라는 당황스러움이었다. 그 이후 나온 김금희의 소설을 읽게 만든 동력은 김금희 소설에 대한 평단의 호평 때문이었다. 줏대가 없는 나는 평단의 평가에 민감해서 김금희의 소설을 잠자코 읽다가 기어이 좋아하게 됐다. 「너무 한낮의 연애」를 다시 읽게 만든 것은 문득 필용의 마음이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승승장구하던 필용은 영업팀장으로 있을 때 돈과 관련된 문제에 휘말려 한순간에 감봉 처분과 함께 시설관리팀으로 좌천된다. 사실상의 권고사직이었던 셈이지만 필용은 버티기로 결심한다. 바로 그때 생각난 것이 대학 시절 양희와 함께 가던 종로에 있는 맥도날드였다. 맥도날에서 필용은 맞은편 건물에 걸린 현수막 “나무는 ‘ㅋㅋㅋ’하고 웃지 않는다”라는 포스터를 보고는 그것이 양희의 작품임을 직감한다. 대학 때 필용과 양희가 아련하고도 모호한 감정을 주고받던 시절 양희가 준비하던 작품 제목과 같았기 때문이다.
99년 필용과 양희가 먹던 피시버거는 사라지고 없지만 양희에 대한 필용의 기억만큼은 남아 있다. 우연히 같은 어학원에 다니던 필용과 양희는 천원 혹은 이천원을 주고 ‘가능’한 메뉴를 부탁하는 양희의 다소 기괴한 행동을 필용이 받아들이면서 가까워진다. 양희는 필용을 사랑한다고 매일 얘기하지만 한낮에 맥도날드에서 이루어진 양희의 고백은 관계의 진전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고백을 한 사람은 양희이지만 그렇다고 관계의 변화를 양희가 바랐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양희는 필용의 마음을 생장시키지만 정작 자신의 사랑은 없어져 버린다. 고향으로 내려간 양희에게 찾아간 필용에게 양희가 해줄 수 있는 말이라고는 “나무나 보”라는 말이었다.
필용과 양희의 인연은 거기까지였고, 필용은 직장인이 되어 팀장이 되었지만 갑작스레 위기에 내몰렸고, 양희는 바라던 대로 연극을 연출하고 있다. 물론, 조만간 연극은 막을 내릴 처지이지만. 처음 읽었을 때나 지금이나 양희라는 캐릭터에는 설득당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하지만 양희라는 캐릭터에는 김금희 소설에 한결같이 흐르는 윤리적 태도가 잘 드러나 있다. 있지 않다고 해서 의미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 “시간이 지나도 어떤 것은 아주 없음이 되는 게 아니라 있지 않음의 상태로 잠겨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남았다(42쪽).”
작가와 비슷한 시기를 통과해온 사람으로서 90년대 후반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물적 조건은 모르겠지만 사회를 둘러싼 마음의 공기가 좋아졌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끔찍한 시절도 있었고 그 끔찍했던 시절에 각자의 마음에도 어떠한 일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설령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고 지금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하더라도 그것들을 그냥 없던 셈 칠 수는 없다는 것. 아니 오히려 그 “있지 않음”을 돌아볼 때 과거를 진정 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마스크를 쓴 타인에게 안녕을 온전히 묻기도 어려운 이 시절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는 아픈 과거를 성찰해 보고 지금의 나는 어디에 있는지 돌아보는 일일지도 모른다. 지금이 너무 환한 한낮이라고 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