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목의 이유와 신뢰할 수 없는 화자

클로이 자오 <노매드랜드>, 플로리안 젤러 <더파더>

by 노창희

이번 주에 본 영화는 <노매드랜드>와 <더파더>다.


‘유목’이란 개념에 매료된 적이 있었다.

깊이 있는 공부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노매드랜드>에서 다루는 유목은 낭만적일 수 없음은 물론,

정주 할 수 있는 것이 갈수록 소중한 권리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체감하게 한다.


<노매드랜드>에서 유목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유목을 해야 하는 이유다.

프란시스 맥도맨드 분한 펀에게는

유목 말고도 다른 대안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펀은 유목을 택한다.

펀이 유목을 택한 이유는 자신만의 잘못이 아닌

사회의 구조적 변화로 빼앗겨 버린 과거의 삶을 지키기 위해서다.


<노매드랜드>는 갈수록 심각해져 가는

양극화의 문제와 공간에 대한 점유권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기생충>과 결을 같이 한다.

<힐빌리의 노래>와 마찬가지로 논픽션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영화라는 점에서 생각을 지점을 던진다.

과연 대한민국에서는 논픽션을 원작으로 한 좋은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인가?

내가 발 딛고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 대해 우리는

모르는 것이 너무도 많다.

좋은 논픽션이 필요한 이유다.


<노매드랜드>는 양극화라는 시대정신에 집중하면서

펀이라는 한 개인의 선택에서 경제위기와 같은

사회적 구조 변화가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처연하게 보여준다.

개인적으로는 영화를 볼 때보다 보고 난 이후에 남는 것이

많은 영화여서 좋았다.


<더 파더>는 신뢰할 수 없는 화자라는

개념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안소니 홉킨스가 분한 안소니는

기억을 잃어 가는 노인이다.

<더 파더>가 단순히 늙어가는 노년을 다루는

영화와 차별되는 지점은

과연 신뢰할 수 없는 것이

기억을 잃어 가는 노인 뿐일까라는 의문을 끊임없이 던지기 때문이다.


오래된 관계일수록

한 번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기는 어렵다.

영화를 보고 두 딸이 과연 안소니에게

진실만을 얘기하고 있는 것인지 확인하기는 어렵다.

가까운 사람에게 신뢰할 수 없는 화자가

되어 버리는 일만큼 슬픈 일도 드물 것이다.

<더 파더>는 결국 나 자신조차 신뢰하기 어려운 존재로 전락하게 되는

생의 마지막을 다룬다.


37년 생인 안소니 홉킨스의 연기는 여전히 일품이다.

<더 파더>를 보시고 안소니 홉킨스를 또 보고 싶으신 분은

안소니 홉킨스가 킹 리어 역할로 분한 <킹 리어>를 보셔도 좋을 것이다.

<더 파더>의 안소니 홉킨스와 <킹 리어>의 안소니 홉킨스는

당연하게도 많이 겹쳐 보인다.


나는 <더 파더>를 더 재밌게 봤지만,

최우수 작품상은 시대정신을 담은 작품에 높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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