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라이트 <우먼 인 윈도>, 알프레드 히치콕 <이창>
이번 주에 본 영화는 조 라이트의
<우먼 인 윈도>와 알프레드 히치콕의 <이창>이다.
라캉에 따르면 인간은 항상 ‘보여지는 존재들’이다.
(숀 호머. 『라캉 읽기』의 ‘응시’와 관련 장에서 재인용)
인간은 보여지면서 타인을 관찰한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타인의 관심을 갈구하면서
타인이 자신에게 지나친 관심을 갖는 것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갖는다는 것이다.
<우먼 인 윈도>가 실망스러웠던 지점은
‘응시’라는 현대 사회의 중요한 증상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미스터리를 해소하는 장치로 기능적으로만 활용했다는 것이다.
거기다가 주인공은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는
신뢰할 수 없는 화자다.
<조커>를 볼 때도 느꼈던 지점인데,
신뢰할 수 없는 화자를 잘못 활용하게 되면
관객은 그 영화에서 아무것도 믿지 못하게 될 수 있다.
그래도 에이미 아담스, 줄리안 무어, 개리 올드만을
한 영화에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다.
줄리안 무어의 연기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이창>은 여러모로 흥미로운 영화다.
가장 좋았던 지점은 블랙코미디로
서사를 풀어낸다는 것이었다.
사진사가 다리를 다쳐 ‘뒷창문’으로 타인들을 관찰한다는
설정은 충분히 작위적이다.
<우먼 인 윈도>가 정신질환자의 납득하기 어려운 행동으로
나 자신의 무지를 돌아보는 과정에서 불편함을 느끼게 한다면
<이창>은 인간이 타인에게 관심을 갖게
되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면서 몰입하게 한다.
공감이 되면 작위성도 미덕이 된다.
어쩔 수 없이 타인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관심을 갖게 되는 존재가 인간이다.
보여지는 대상으로서의 내가 보여지는 타인을 응시하는 행위는
지극히 자연스럽다.
다만, 지나치면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너무도 큰 해악이 뒤따라 온다.
‘응시’가 중요한 테마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