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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창희 Oct 16. 2019

익숙한 질서 너머의 세상을 상상하기

김지혜, 『선량한 차별주의자』, 파주: 창비

요즈음 한국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감정은 혐오와 분노인 거 같다. 이 감정들이 초래하는 부작용은 막대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것은 특정 집단에 대해 근거 없는 적대감을 가지게 한다는 것이다. 이 적대감은 자신이 혐오하는 집단을 이해하고자 하는 감수성을 갖기 어렵게 만든다. 감수성의 부족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상대방이 차별로 느낄 수 있는 행동을 유발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김지혜의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차별이 발생하는 맥락과 차별을 당했다고 느낄 때 대처하는 자세와 그 해결책에 대해 다루고 있다. 제목이 상당히 인상적이고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선량한’과 ‘차별주의자’가 결합된 선량한 차별주의자라는 제목은 형용모순이다.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 이 형용모순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누구나 어느 정도는 자신의 이해에 근거하여 편향되어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편향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채 살아간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내가 모르는 사이 타자에게 차별적인 행동을 하거나 모욕감을 줄 수 있다.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이 묘사되어 있는 「프롤로그」는 상당히 인상적이다. 저자는 혐오표현에 관한 토론회가 있던 날 ‘결정장애’라는 말을 무심코 쓰게 되는데 토론회 끝난 이후 왜 그런 표현을 썼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된다. 많은 장애인들이 참석했던 토론회에서 장애인을 폄하하는 용어인 ‘결정장애’를 쓴 것에 대해 참석자 중 한명이 질문을 통해 정중한 항의를 한 셈이다. 


저자인 김지혜 교수의 자기성찰적인 고백은 우리가 타자의 입장에 대해 얼마나 무지할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결정장애라는 말을 일상적으로 쓰는 정상인의 입장에서 저 표현이 장애인을 폄하하는 발언일 수 있다는 사실은 망각되기 쉽다. “소수자, 인권, 차별에 관해 가르치고 연구(책날개, 저자소개)”하는 김지혜 교수 같은 사람도 그러하다면 다른 이들은 타자가 가진 차이를 인정하고 그에 적합한 감수성을 가지기는 더욱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이 제안하는 태도는 “불평등한 세상에서‘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되지 않기 위해, 우리에게 익숙한 질서 너머의 세상을 상상해야 한다(205쪽)”는 것이다.         

나는 다른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착각이고 신화일 뿐이었다.
누군가를 정말 평등하게 대우하고 존중한다는 건 나의 무의식까지 훑어보는
작업을 거친 후에야 조금이나마 가능해질 것 같았다.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나를 발견하는 일 말이다(10쪽).     


모두에게 평등하기는 무척 어렵다. 출발점이 다른 상황에서 모두에게 공통된 규칙을 적용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다양성을 모두 ‘포함’하는 보편성을 찾아야 한다(179쪽)”고 주장한다. 이 일은 매우 어렵기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이 노력할 수밖에 없다. 선량한 차별주의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 책에서 제안하는 「차별금지법」도입 못지 않게 김지혜 교수 같은 연구자가 차별에 대해 연구하고 이에 대한 필요성을 대중에게 알리는 일도 중요하다. 법 못지 않게 문화를 바꾸어 나가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미덕은 메시지 뿐 아니라 문장이 좋다는 것이다. 다음의 문장을 소개하며 마친다.      


내가 모르고 한 차별에 대해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 “몰랐다” “네가 예민하다”는 방어보다는, 더 잘 알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어야 했는데 미처 생각지 못했다는
성찰의 계기로 삼자고 제안한다. 서로 다른 위치에 있는 우리들은 서로에게 차별의 경험을 이야기해주고 경청함으로써 은폐되거나 익숙해져서 보이지 않는 불평등을 감지하고 싸울 수 있다. 우리가 생애에 걸쳐 애쓰고 연마해야 할 내용을 ‘차별받지 않기 위한 노력’에서 ‘차별하지 않기 위한 노력’으로 옮기는 것이다(1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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