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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창희 Oct 13. 2019

‘넷플릭스의 시대’에 짚어봐야 할 쟁점과 변화

코리 바커, 마이크 비아트로스키외 지음『넷플릭스의 시대』(임종수 (역)

코리 바커(Cory Barker)와 마이크 비아트로스키(Myc Wiatrowski)가 쓰고 엮은 『넷플릭스의 시대』(임종수 (역), 이하 이 책을 인용할 경우에는 각 장의 저자와 제목을 인용할 것이다.)는 문화적 관점, 산업적 관점, 이용자적 관점에서 넷플릭스로 인한 변화를 폭넓게 다루려고 애쓴 흔적이 드러나는 책이다. 몇 가지 키워드로 이 책을 정리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글로컬리제이션(glocalization)     


넷플릭스와 관련하여 국내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 중 하나는 넷플릭스가 국내에서 어떻게 현지화를 시도하고 있는가 하는 부분이다. 크게 보면 국내 제작사와 협업하여 오리지널에 투자하고 국내 미디어 기업과 제휴를 하는 방식이 넷플릭스가 국내에서 현지화하는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넷플릭스가 멕시코에 진출하면서 활용했던 전략을 다룬 엘리아 마르가리타 코넬리오-마리(Elia Margarita Cornelio-Mari)의「멕시코에서의 디지털 전송: 글로벌 신참이 현지의 거인을 휘젓다」는 넷플릭스가 현지에 진출할 때 고민하는 지점들을 보여준다. 넷플릭스가“현지의 인재와 지역적 취향을 가진 능숙한 콘텐츠 선별자를 지원하는 이중의 영향력 있는 커미셔너 역할을 맡고 있다(421쪽)”는 사실은 전세계 어디서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마리는 현지 문화가 넷플릭스에게 ‘장애물’이면서 동시에 ‘촉진제’로 작용한다고 지적하는데 촉진제로 작용한다고 보는 근거는 넷플릭스가“시청자의 취향을 파악하는 데 사용되는 고도화된 축적 수단을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398쪽).      


데이터를 활용한 콘텐츠 제작은 현지의 제작자들에게 중대한 도전이다. 제작의 영역은 인간의 창의성과 관련된 부분이고 국내의 경우 제작 요소 시장에서 가장 큰 경쟁력이 뛰어난 인적 자원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기 때문에 제작 분야에서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 지는 앞으로도 계속 논란 거리를 제공할 것이다.   

   

빈지(binge)뷰잉과 시청 흐름의 변화     


방송이 지닌 전통적인 사회적 의미는 특정한 콘텐츠를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 혹은 지역에서 시청한다는 것이었다. 다채널 유료방송의 등장으로 방송이 아닌 협송이라는 개념이 도입된지 수십년이 지났지만 동영상 이용이 개인적인 행위라는 것은 넷플릭스를 포함한 온라인 기반 매체의 도입과 발달이 계기가 되었다.      

앨리슨 N. 노박(Alison N. Novak)이 「내로우캐스팅, 밀레니얼과 디지털 미디어의 장르 개인화」에서 “내로우캐스팅이 수십 년 동안 산업적 규범이었음에도, 그것이 방송의 역사적 모델에 대척적인 관계성을 가지게 된 것은 넷플릭스의 개인화가 영화와 텔레비전 산업 내에서 변화의 힘으로 대두되면서(301쪽)”라고 지적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 개인화가 중요한 점은 소위 스트리밍 미디어라고 부르는 동영상 이용 실천 양식은 이용의 주도권을 온전히 이용자에게 넘긴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비비 테오도로파울루(Vivi Theodoropoulou)는 「쌍방향 디지털 텔레비전에서 인터넷 “인스턴트” 텔레비전으로: 넷플릭스, 진화론적 관점에서 본 권력이동과 새로이 떠오르는 수용자 실천」에서“넷플릭스는 언제, 어디서, 그리고 얼마나 많은 에피소드를 몰아보기할 것인지에 대한 통제권을 이용자에게 부여한다(361쪽)”고 지적한다.     


넷플릭스라는 매체가 가장 먼저 환기하는 용어 중 하나는 바로 빈지뷰잉이다. 빈지뷰잉은 개인화된 이용의 한 극단적인 형식을 상징한다. 이에 대해 국내에서 합의된 번역어는 아직 없는 듯하다. 몰아보기, 콘텐츠 폭식과 같은 단어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빈지뷰잉이라고 그대로 쓰는 경우가 가장 많은 것 같다. 조이미 베이커(Djoymi Baker)는 빈지(binge)라는 용어를 ‘과잉과 방임(73쪽)’이라는 부정적 측면의 어원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바보상자나 카우치 포테이토라는 경멸적인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방송을 본다는 행위는 전통적으로 가치가 없는 행위로 폄하되곤 했다.      


하지만 마리아 비안치니(Maria Bianchini)와 마리아 카르멘 야콥 드 수자(Maria Carmen Jacob De Souza)가「넷플릭스와 <못말리는 패밀리>의 혁신적인 서사구성」에서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넷플릭스의 오리지널에 대한 과감한 투자는 넷플릭스가 만들어 낸 콘텐츠와 그 콘텐츠에 의해 가치가 상승한 넷플릭스 자체에 상징적인 자본을 부여하는 효과를 창출하고 있다. 이로 인해 에밀 스타이너(Emil Steiner)가「몰아보기의 실천: 스트리밍 영상 시청자의 의례, 동기, 느낌」에서 얘기한 것처럼 넷플릭스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문학에 좀 더 가까운 모습(295쪽)”이 되어 가고 있다. 2018년에 배포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가 일으킨 비평적 반향은 넷플릭스가 자신들이 생산하는 콘텐츠를 소비하는 행위에 대해 문학적인 가치 부여를 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더 이상 일방향적인 편성에 종속될 필요가 없어진 이용자들은 넷플릭스와 같은 스트리밍 플랫폼을 통해 마음껏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시청 흐름의 변화 뿐 아니라 비평의 영역에도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저스틴 그랜디네티(Justin Grandinetti)는 「주시청 시간대에서 모든 시간대로: 스트리밍 비디오, 시간리듬, 그리고 공동체 텔레비전의 미래」에서“넷플릭스의 행보는 전통적인 공동체 텔레비전 모델뿐만 아니라 텔레비전 비평가와 시청자 간에 고정된 권력 관계를 지속적으로 허물어뜨렸다(66쪽).”고 지적한다. 특정 콘텐츠에 국한해서는 그 정보량에 있어 비평가가 애호가를 따라가기 쉽지 않은 것이 현재의 미디어 환경이다. 이는 애호와 비평의 영역을 흐릿하게 만들어 갈 것이고 애호가가 가지는 영향력은 더욱 커질 것이다.       


스트리밍 시청 문화의 확산은 방송을 제공하는 방식과 그와 관련된 산업적 제반 환경의 역학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 전파를 송신하던 지상파 방송과 다채널을 제공하는 유료방송과 달리 넷플릭스는 인터넷을 통해 이용자에게 제공된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방송 시청흐름의 주도권이 방송에서 인터넷으로 전환된다는 것은 산업적으로 큰 의미를 지닌다.      


일반 이용자들이 쉽사리 지각하기 어려운 것은 폭주하는 동영상 이용이 초래하는 데이터 트래픽이다. 이것은 인터넷의 기본정신 중 하나인 망중립성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조셉 도니카(Joseph Donica)는 「스트리밍 문화: 인터넷의 원심력적 발전과 불확실한 디지털 미래」에서“인터넷을 공공재로 간주하는 것은 상품으로서 정보(information-as-commodity)에 대한 철학과 긴장관계를 야기한다(125쪽).”고 지적한다.      


넷플릭스가 서비스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망중립성 위배라고 해석될 수 있는 행위를 하고 있다는 비판(“컴캐스트 고객들에 대한 접속료를 지불하기 시작했을 것이라는 논란(108)”)은 바로 인터넷을 공공재로 바라보는 관점과 대립한다. 여기에 정답은 있을 수 없다. 각자의 이해관계와 철학적 가치관에 따른 논쟁이 진행되고 있을 뿐이다. 분명한 것은 시청자들의 시청행태 변화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반이 되는 인터넷 접속과 관련해서도 중대한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는 것이다. 콘텐츠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망이 필요하고, 망을 가지고 있는 사업자는 콘텐츠 제공자 없이는 고객을 유치하는 것이 불가능한데, 이용자가 동영상을 많이 이용하여 발생하는 트래픽에 대한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지가 중요한 쟁점이 된 것이다.        


넷플릭스는 대안적 문화공간으로 기능할 수 있는가?     


국내에서 넷플릭스와 관련하여 아직까지 큰 쟁점으로 부각되지 않은 부분이 넷플릭스가 과연 대안적 문화 플랫폼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부분이다. 마리아 산 필립포(Maria San Filippo) 「복역하기, 퀴어의 시간성과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에서 “넷플릭스와 <오렌지>는 최선을 다해서 텔레비전과 사회적 세계 모두에 퀴어의 시공간을, 그리고 그것을 넘어선 시각을 비슷하게 제공한다(181-182쪽).”고 지적한다. 확실히 넷플릭스와 같은 온라인 플랫폼은 기존 시장에서 다루기 어려운 퀴어와 같은 소재를 다루는 데 별다른 제약이 없다.    

  

시민참여를 자극하는 콘텐츠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제임스 N. 길모어(James N. Gilmore)는 「<더 스퀘어> 유포하기: 잠재적 행동주의로서 디지털 배급」에서“디지털 배급 행위 자체가 정치적 수행이라고 주장(240쪽)”한다. 이는 정치적 의미를 가진 콘텐츠를 유통시키는 것 자체가 정치적 의미를 가진다는 의미이다.      

문화적 대안으로의 기능하는 것은 넷플릭스가 현지의 문화적, 정치적, 제도적 실천과 효율적으로 ‘절합(articulation)’할 때 가능하다. 만약 넷플릭스가 대안 문화 창출과 관련해서도 현지화에 성공한다면 상당한 반향을 일으킬 것이다.       


넷플릭스로 인해 나타나는 변화는 현재 진행형     


넷플릭스로 인해 일어나는 변화는 현재 진행형이다. 현재 넷플릭스는 막대한 콘텐츠 투자비(여기는 자승자박적인 측면이 있다는 것이 딜레마다)와 디즈니와 같은 전통적인 강자들의 혁신이라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 몇 년 지나지 않아 넷플릭스는 과거의 신화에 머무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넷플릭스가 끼친 영향이 상당한 것만은 분명하며, 향후에도 혁신을 통해 현재의 영향력을 유지하거나 강화할 수도 있다. 


비비 테오도로파울루(Vivi Theodoropoulou)는 「쌍방향 디지털 텔레비전에서 인터넷 “인스턴트” 텔레비전으로: 넷플릭스, 진화론적 관점에서 본 권력이동과 새로이 떠오르는 수용자 실천」에서 지적한 것은 것처럼“기술은 빠르게 바뀔지라도 수용자 행동과 습관은 그보다 느리게 변한다(374쪽).”수용자인 우리는 『넷플릭스의 시대』에 다룬 변화의 쟁점들을 관조하며, 향후의 변화를 관망할 수 있을 따름이다.    


참고문헌     


Baker., C. & Wiatrowski, M. (Eds) (2017). The age of netflix: Critical essays on streaming media, digital delivery and instant access. 임종수 (역) (2019).『넷플릭스의 시대』. 부천: 팬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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