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법론으로서의 달리기

무라카미 하루키.『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by 노창희

책이라는 것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지 대략 20여년이 되어 간다. 20대 초반부터 책이라는 것을 열심히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었고, 지금도 특정 시간을 할애해서 책을 본다. 아직도 내가 책을 좋아서 읽는 것인지 의무감에 읽는 것인지 책을 읽는 내 모습이 좋아서 책을 읽는지는 확실치 않다.


사회과학에 발을 들여놓은 지 강산이 한 번 바뀌고 또 반 번쯤 바뀔 만한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내 독서의 중심은 문학이고 앞으로도 그 사실이 바뀔 것 같지는 않다. 당연히 그 세월 동안 좋아하는 작가가 있을 것이고 작품이 있을 것이다. 작품이 좋아야 작가가 좋은 것이 인지상정. 아주 드물게 작품보다 작가 자체가 더 좋은 경우도 있다. 물론, 이 경우도 작품이 좋아야 가능한 일이다. 작품도 좋지만 작가가 더 좋다는 얘기인데 나에게는 무라카미 하루키와 장강명이 그렇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장강명이 가진 공통점은 프로의식을 가지고 성실하게 글을 써 나간다는 것이다. 내가 학부 시절 문학을 전공했던 21세기 초만 해도 소설가를 포함한 예술가라는 존재는 성실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영감에 의존해서 창작을 하는 존재라는 선입견이 강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이러한 선입견은 일본에서도 강하게 작용했던 것 같다. 하루키는 사람들이 작가에 대해 “건전하지 않은 생활을 보내지 않으면 안(148쪽)”되는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고 얘기한다.


산문 혹은 긴 길을 써 본 사람이라면 체력을 유지하면서 성실한 태도로 글을 써 나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체감할 수밖에 없다. 경우에 따라 글이 잘 써지는 날 몰아 쓰는 성향이 있는 작가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나는 성실하지 않은 사람이 글을 잘 쓴다는 것을 신뢰하지 않는다. 필립 로스의 다음의 문장을 나는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쪽이다. “영감을 찾는 사람은 아마추어이고, 우리는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 간다(『에브리맨』. 정영목 옮김, 파주: 문학동네, 86쪽).”


하루키가 달리기를 시작한 이유는 체력을 유지하면서 성실하게 글을 써 나가기 위해서다. 마라톤을 완주하기 위해서는 하루하루 달리기를 하면서 체력을 길러 나가는 수밖에 없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글 쓰는데 임하는 시간을 포함해서 글쓰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는 일,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일 등 절대적인 시간을 투자하지 않으면서 좋은 글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물론 나라고 해서 지는 걸 좋아할 리는 없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다른 사람을 상대로 이기거나 지거나 하는 경기에 대해서는 옛날부터 한결같이 그다지 연연하지 않았다. 그러한 성향은 어른이 된 뒤에도 대체로 변하지 않는다. 어떤 일이 됐든 다른 사람을 상대로 이기든 지든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그보다는 나 자신이 설정한 기준을 만족시킬 수 있는가 없는가에 더 관심이 쏠린다(24-25쪽).”


나는 위의 문단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사람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타인과 경쟁을 회피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나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결국 내 페이스를 지키면 나의 기준을 넘어서는 셈이고, 결과는 자연스럽게 뒤따라 온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사회생활에도 적용되는 방식이라고 생각하지만, 글을 쓰는 행위야 말로 자신의 기준을 충족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소설가라는 직업에-적어도 나의 경우라는 전제하에 하는 말이지만-이기고 지는 일이란 없다. 판매 부수나, 문학상이나, 비평을 잘 받거나 못 받거나 하는 일은 뭔가를 이룩했는가의 하나의 기준이 될는지는 모르지만, 본질적인 문제라고는 할 수 없다. 자신이 쓴 작품이 자신이 설정한 기준에 도달했는가 못했는가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며, 그것은 변명으로 간단하게 통하는 일이 아니다. 타인에 대해서는 뭐라고 적당히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을 속일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을 쓰는 것은 마라톤 풀코스를 뛰는 것과 비슷하다. 기본적인 원칙을 말한다면, 창작자에게 있어 그 동기는 자신 안에 조용히 확실하게 존재하는 것으로서, 외부에서 어떤 형태나 기준을 찾아야 할 일은 아니다(26쪽).”


“달린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 유익한 운동인 동시에 유효한 메타포이기도 하다(27쪽).” 확실히 달리는 행위와 글 쓰는 행위에는 유사성이 있다. 그리고 나는 이것이 인생을 대하는 태도와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변수가 많은 인생을 그나마도 나의 편으로 만드는 일은 최대한 주변을 의식하지 않으면서 나만의 기준을 만들고 그것을 지켜나가는 수밖에 없다. 이것이 하루키가 인생의 방법론으로서 달리기를 선택하고 하루하루 성실히 달리고 글을 쓰는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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