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감함과 희망 사이 완충지대로서의 삶

김훈.『내가 읽은 책과 세상』.

by 노창희

“내일이 새로울 수 없으리라는 확실한 예감에 사로잡히는 중년의 가을은 난감하다(13쪽).” 앞의 문장을 내가 처음 접한 것은 20대 초반이었다. 진로를 두고 고민이 많았던 시기였다. 내일이 어찌 될지 몰라 난감한 때였다. 만으로 40이 넘은 지금 나를 중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전적으로 중년의 정의가 마흔 살 안팎의 나이를 의미하니까 당연히 중년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고령화가 심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40대 초반도 중년이라고 할 수 있을지 묻게 되는 것은 그리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읽은 책과 세상』을 읽은 후 중년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나는 자연스럽게 위의 문장을 떠올리게 된다.


중년이 되면 내일이 새로울 수 없다고 느끼는 것은 인생이 갑자기 좋아지기 어렵다는 것을 중년쯤 되면 알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중년이 되어도 앞으로 인생에 어떤 일이 닥칠지 알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다만 희망 같은 것을 품기는 점점 더 어려워진다. 희망은 김훈과 가장 어울리지 않는 단어 중 하나다.


김훈의 글을 읽어 온 지 20여 년이 되어 간다. 『내가 읽은 책과 세상』을 다시 펼친 것은 ‘중년’이라는 시기가 주는 난감함이 문득 떠 올랐기 때문이다. 내가 김훈의 글에서 느끼는 가장 두드러진 정서는 허무주의와 비장함이다. 김훈은 세상이 원래 그러할 수밖에 없다고 얘기하는데 그 세상은 끔찍한 세상이다. 『칼의 노래』에서 이순신이 받아들여야 하는 세상이 그러하고 『흑산』에서 정약전이 마주한 세상 또한 그러하다.

허무주의와 비장함이라는 단어는 언뜻 어울리지 않게 느껴진다. 허무주의는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태도로 이어진다. 하지만 삶이 끔찍한 것인데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면? 자연스럽게 비장함으로 이어지게 된다. 『내가 읽은 책과 세상』에서 김훈이 다루는 것은 시고 시에 담겨 있는 자연이다. 김훈의 글들을 읽다 보면 김훈이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는 것은 자연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연은 사람의 힘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그래서 김훈은 자연만을 긍정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희망처럼 김훈과 어울리지 않는 단어도 없으리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새로 다가올 시간에 대한 긍정 없이 버틸 수 있는 삶이란 존재할 수 없다. 다만 김훈은 직접적으로 희망을 말하지 않는다. 김훈 보다 한참 어리지만 김훈이 친구라고 부르는 기형도의「정거장에서의 충고」는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에 대해 김훈은 “미안하지만”을 앞세우는 희망은 희망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199쪽). 끝내 배신 당할지라도 인간은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난감한 것이 삶이고 그 난감함을 감당해 주는 것은 아직 다가오지 않은 삶의 순간에 대한 희망이다. 희망이 담겨 있는 새로운 시간에 대한 다음의 문단을 옮기며 마친다.


“시 속의 강은 사람의 앞에 펼쳐진 시간들은 끝끝내 새로운 것이라는 인식과 결부되어 있다. 앞으로 닥쳐올 시간들은 이 미립자 한알한알 모두가 인간에게 경험된 적이 없는 낯선 것들이며, 그 낯선 시간의 가루들은 사금파리처럼 흩어져 멸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생명 속에서 일련의 지속적인 ‘흐름=강’을 이루어 흘러간다. 사람에게 창조와 사랑이 가능한 것은 시간의 강이 새롭기 때문이라고, 많은 시들은 노래하거나 또는 운다(1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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