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현석 북클럽(2021년 10월 17일, <소전서림>)
“이와 같은 현실에서 ‘이전의 세계’를 기억하고 그 세계를 비판적으로 복기함으로써 온당한 이후를 맞이하려는 문학은 분명, 그 어느 때보다 더 필요해 보인다. 그것이 비록 문학만이 수행할 수 있는 작업은 아닐지라도, 언어와 문자로 가려진 부분을 조망하고 들추어내어 타인의 삶을 가슴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은 분명 문학이 가진 특별한 강점이므로(이현석, 「이전의 세계」, 『문학동네』, 2020년 여름호, 19-20쪽).”
위의 문단에 대해서라면 이미 한차례 글을 쓴 적이 있지만 복기하는 이유는 이현석 작가를 북토크를 통해 만날 기회가 있어 급히『다른 세계에서도』를 다시 읽고 궁금했던 것들을 물을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다.『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통해 「다른 세계에서도」를 읽었을 때 작품을 관조적으로 평가하기에 앞서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잘 읽히면서도 쉽게 잊혀지지 않을 무언가를 남기는 작품을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리얼리즘 문학이 드물어진 현재의 한국 문학 풍토에서「다른 세계에서도」를 만나 반가웠고, 이현석의 다음 작품은 언제쯤 볼 수 있을까 궁금했고 다행히 2021년에 『다른 세계에서도』가 출간되어 다른 작품들도 접해볼 수 있게 되었다.
학부 때 문학을 대학원에서 사회과학을 공부한 입장에서 이현석의 글쓰기는 다분히 사회과학적으로 느껴졌다. 「참고한 내용과 약간의 덧붙임」을 읽어 보면 알 수 있는 것처럼 이현석은 현실을 스터디하고 그것을 소설로 만들어 낸다. 소설이든 영상 서사든 주어진 현실을 제대로 미학화하지 못하면 실패하게 된다. 좀 더 과격하게 얘기하면 창작자가 환기하고 싶은 현실이나 사건을 홍보하는 효과를 가질 수는 있겠으나 실패한 작품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현석의 소설들은 다분히 사회과학적으로 느껴지지만 그것을 문학적으로 형상화 하는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이현석에게 사회과학적인 글쓰기로 느껴진다고 물었고, 그도 거기에 수긍했다.
『다른 세계에서도』가 출간되기 전에 접한 작품은 「다른 세계에서도」와 「부태복」이었다. 두 작품 모두 인상적이었다. 「다른 세계에서도」는 윤리적으로는 포괄적인 지지를 얻을 수 있는 메시지를 구현하고자 할 때 현실 세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고, 나는 여전히 그 지점이 흥미롭다. 이현석은「부태복」을 잘 읽히게 쓴 작품이라고 했는데 그런 점에서 「부태복」의 첫 문장은 무척이나 인상적이고, 작품의 핵심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진단은 귀납적 추론이다(105쪽).” 개별 사례에 대한 연구를 통해 결과를 도출해 나가는‘귀납’이라는 용어는 ‘연역’의 맞은 편에 놓여 있는 사회과학에서 가장 중요한 용어 중 하나다. 작가의 말을 직접 듣고는 저 문장을 다시 접하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당분간 나에게 최고의 첫 문장은 “진단은 귀납적 추론이다.”라는 문장이 될 것 같다.
북토크 전에 「다른 세계에서도」와 「부태복」과 더불어 가장 흥미로웠던 작품은 「컨프론테이션」이었다. 다시 읽었을 때도 재밌게 읽었고, 이현석이 앞으로도 연애 소설을 써 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게 된 작품이었다. 북토크 과정에서 다른 독자들의 말을 듣고 관심을 가지게 된 작품은 「눈빛이 없어」와 「너를 따라가면」이었다. 두 작품은 우리가 잊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과거를 소설로 재현해 내고 있다. 앞에 인용한 문단의 요지를 반복해서 다시 적어 보자면 문학의 중요한 기능은 이전의 세계를 잊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이후의 세계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고 나는 문학만이 할 수 있는 ‘어떤 지점’이 있다고 믿는다. 나는 그 일을 이현석이 계속해 주리라고 믿는 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