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원한의 간극을 메우는 매개물로서의 이야기

강화길.『대불호텔의 유령』.

by 노창희

강화길이라는 좋은 작가가 등장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지는 이미 오래전의 일이다. 하지만 나는 『괜찮은 사람』에 실려 있는 「호수-다른 사람」을 끝까지 읽는데 번번이 실패했다. 나의 취향과도 관련이 있을 테지만 낯설은 분위기가 강화길 소설에 진입하는 장벽이었을 수도 있다. 내가 강화길이라는 작가를 좋아하게 된 계기를 제공한 것은 「음복」이었다. 아마도 강화길만큼 서스펜스를 잘 끌고 가는 한국 작가는 드물 것이다. 강화길이 자아내는 서스펜스가 귀한 재능인 것은 장르물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서스펜스와는 다른 방식의 긴장감을 독자에게 선사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뢰이한을 너무나도 깊이 사랑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가 없이도 살아가기 위해서, 그를 사랑하지 않는 가짜 마음을 만든 것이다. 그러니 그녀가 품은 건 원한이 아니다. 그건 영원한 사랑이다(296-297쪽).”『대불호텔의 유령』은 셜리 잭슨이 대불호텔에 묶었다는 상상력을 기반으로 고연주, 지영현이 대불호텔에서 겪는 일들을 다룬다. 소설 리뷰에 있어 줄거리 요약을 중요하게 여기는 편이지만 『대불호텔의 유령』만큼은 줄거리를 요약해서 얘기하고 싶지 않다. 『대불호텔의 유령』에서 느껴지는 서스펜스와 정서만큼은 요약으로 전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살아 있는 것들은 무서워하지 않아요. 살아 있는 것들이 남긴 것을 두려워하죠. 그건 무엇일까요. 원한, 고통, 절망. 그런 것들일까요(141쪽).” 셜리 잭슨이 『대불호텔의 유령』에서 남긴 앞의 문장은 인간의 존재 자체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인간이 품는 감정이 무섭다는 것을 시사해 준다. 강화길이 인간의 감정을 드러내는 방식은 ‘악의’와 ‘원한’을 보여주는 것이다.

「음복」에서 세나가 남편인 정우의 가족들에게 발견하는 것도 ‘악의’와 ‘원한’이다. 나는 「음복」을 읽고는 정우의 무지에 대해 세나가 품게 되는 악의만이 인상적으로 남았다. 하지만 『대불호텔의 유령』까지 읽고 나니 악의와 원한과 같은 감정도 사랑과 연결될 수 있는 지점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뿜어내는 긍정적인 함의뿐 아니라 그것을 지켜 내기 위해서는 지독한 악의도 필요하다는 것이 「음복」과 『대불호텔의 유령』에서 강화길이 전달하고 싶었던 중요한 메시지가 아닐까?


『대불호텔의 유령』의 내용에 대해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면 형식과 관련해서는 꼭 얘기해 두고 싶다. 「니꼴라 유치원」이라는 『괜찮은 사람』에 실린 단편에 관한 얘기로 시작한다. 문제적인 것은 화자가 ‘나’라는 것이다. 『대불호텔의 유령』에 등장하는 화자 ‘나’는 실재하는 소설가 강화길이면서도 동시에 강화길이 아니다. 『대불호텔의 유령』에 등장하는 소설가 셜리 잭슨이 실재하는 셜리 잭슨이면서 동시에 아니듯이. 믿을 수 없는 화자인 박지운의 이야기를 따라가다가 결연한 태도로 “이제 더는 박지운을 찾아가지 않으리라. 이제는 내가 정리한 이야기 속의 박지운을 들여다보리라(297쪽).”고 선언하듯 얘기하는 화자의 태도는 작가의 태도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소설은 허구이지만 현실에 발 딛고 있는 얘기이며, 귀신이 등장하는 고딕소설은 결코 리얼리즘 소설이 될 수 없지만 현실과 무관한 판타지만은 아니라는 것. 이미 현실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끔찍한 일들을 강화길식 서스펜스를 통해 전달해 온 작가는 앞으로도 이런 방식의 소설을 써 나갈 것이라고 다짐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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