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진영. 「두 개의 방」
편집자인 선영은 사라져 가는 영화관에 대한 글을 쓰는 그와 같은 동네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술 산책’을 다니게 된다. ‘술 산책’이란 정처 없이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마음에 드는 곳에 들어갔다가 다시 다른 곳을 찾아가서 술을 마시는 것이다. 그와 만나면서 선영은 은미를 떠올리게 된다. 선영은 고등학교 때 은미와 피카디리극장에 가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은미와 내가 가까워진 것은 학교에 늦는 일이 잦았던 은미의 사정 때문이었다. 은미는 친한 친구가 아무도 없었고 나는 호기심에 은미 집에 갔다가 자는 은미를 깨운다. 은미가 지각이 잦았던 이유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고깃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기 때문이었다. 은미 집에 찾아간 것을 계기로 선영과 은미는 가까워진다.
그럼 선영은 왜 그와 술 산책을 다니면서 은미를 떠올리게 되는가? 은미에게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고깃집 사장과 그렇고 그런 관계라는 루머가 따라다니게 되고 은미와 선영은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된다. 은미 역시 선영과의 관계에 있어 적극적이지 않았지만 선영은 은미와 멀어진 것에 대해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부채의식을 느끼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 소설의 제목은 왜 「두 개의 방」인가? 첫 번째 방은 선영이 찾아갔던 은미의 방일 것이다. 춥고 깨끗하다고 느껴지지 않았던 은미의 방은 동생과 같은 방을 써야 했던 선영에게 독립적인 공간으로 느껴졌고 그 방을 온전히 점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은미에게 묘한 부러움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이제 은미와 멀어진 선영은 그 방을 무의식적으로 기억에서 몰아낸 것처럼 보인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으면, 없었던 일이나 마찬가지가 되어버린다고 생각합니다(19쪽).” 그가 기억의 중요성을 강조하자 선영은 기억하지 않더라도 의미가 있지 않냐고 되묻는 선영에게 그는 기억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못을 박아 얘기한다. 또 다른 방은 이제는 철거된 집에 있었던 그의 방이다. 철거 과정에서 없어져 버린 아버지의 집에 있었던 자신의 방. 이제는 기억 속에만 남아 있는 그의 방은 결국은 잊지 말아야 할 자신의 과거의 일부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인근의 이층 주택이 철거되는 장면(「작가노트: 마음의 단층」, 31쪽)”을 목격하는 것에서 시작된 「두 개의 방」에서 방은 결국 기억을 의미한다. 공간이란 변화하고 훼손되고 결국은 사라진다. 그 사라진 공간은 내 기억에 의해 재구성되고 그것이 바로 삶 그 자체일 것이다.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잊고 살고 잊고 싶어서 잊어버린다. 「두 개의 방」은 그러지 말고 잊고 싶은 기억이라도 기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삶은 곧 기억이다. 그것을 부정한다 한들 달라지는 것은 없다. 기억을 부정한다 해도 기억을 부정하는 순간조차 미래에는 과거가 되고 결국 기억을 남기 때문이다. 내가 일부러 잊고 있는 나의 방은 어디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