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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창희 Nov 06. 2021

일상으로의 복귀와 미디어 소비

<아주경제> [노창희 칼럼] 

영화는 가장 대중적인 문화 소비의 영역이지만 취향이 뚜렷하게 구분되는 매니아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는 문화상품이기도 하다. 영화는 꼭 극장에서 봐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영화팬들이 아직도 많다. 이들에게 코로나는 극장에 가기가 예전보다 어려워졌다는 사실보다는 기대작들의 개봉이 줄줄이 연기되었다는 점에서 재앙이었다.


2021년 10월 20일은 영화팬들이라면 그 이름을 모를 수 없는 두 명의 거장이 연출한 작품이 동시에 개봉한 날이었다. 리들리 스콧이 연출한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와 드니 빌뇌브가 연출한 <듄>이 같은 날 개봉한 것은 극장에서 볼만한 영화를 기다리던 관객들에게는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이라고 할 수 있다. 리들리 스콧은 지금 은퇴해도 영화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감독이지만 여전히 왕성하게 작품을 생산해 내고 있다. <그을린 사랑>으로 확실한 존재감을 보여주면서 주목받았던 드니 빌뇌브는 <블레이드 러너>의 속편인 <블레이드 러너 2049>를 성공적으로 연출하면서 당대 최고의 감독 중 한 명임을 다시 한번 증명해 보였다.


SF의 고전인 소설 <듄>은 여태까지 성공적으로 영상화되었다고 평가받았던 적이 없던 작품이다. 드니 빌뇌브가 이 어려운 일에 도전했을 때의 반응은 기대 반 우려 반이었다. <듄>을 본 개인적인 감상은 이건 어쩔 수 없이 극장에서 봐야 할 작품이라는 것이었다. 드니 빌뇌브는 영화를 극장에서 봐야 하는 이유를 보여주기 위해 <듄>이라는 작품을 만든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직도 전세계에서 수많은 확진자가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일상으로 돌아와야 할 필요성은 높아지고 있다. 백신 접종률이 높아지면서 치명률은 낮아지고 있고, 우리나라를 포함한 많은 국가에서 위드 코로나를 선택했거나 위드 코로나 단계로의 진입을 앞두고 있다. 단계적 일상회복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일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보다는 훨씬 더 자유로운 상태에서 일상에 임할 수 있게 되리라는 점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일상으로의 복귀를 앞둔 시점에서 영상 서사에 새로운 이정표가 될지 모르는 <듄>의 개봉은 영화 소비를 포함한 미디어 이용이 코로나 이전과 얼마나 달라질지 궁금하게 만든다. 나를 포함한 많은 이용자가 집에서 OTT를 통해 편하게 영상을 소비하는 것에 길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넓은 화면과 웅장한 사운드를 통해 스펙타클을 경험하고 싶어하는 이들이 많다. 또한, 극장은 단순히 영화만 보는 장소가 아닌 사교의 장이기도 하다. 가족, 연인, 친구들과 함께 극장에 별다른 부담 없이 드나들 수 있었던 과거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다. 하지만 이미 최적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OTT 플랫폼을 통한 영상 소비에 익숙해진 사람들의 이용 관습이 얼마만큼 코로나 이전으로 수렴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11월 3일에는 <노매드랜드>로 2021년 아카데미상 작품상과 감독상을 거머쥔 클로이 자오가 연출을 맡고 안젤리나 졸리와 마동석이 출연하는 마블의 신작 <이터널스>가 개봉한다. 11월에 이뤄질 단계적 일상회복 이후 지금보다 상영시간이 유연해진다면 영화산업이 회복기를 맞이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와 더불어 신작 영화 개봉이 감소하면서 타격을 입은 유료방송 VOD 이용이 어떻게 변화할지에 관한 부분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10월달에 시작된 여자 배구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도 높고 국내를 대표하는 프로 스포츠인 프로야구도 포스트 시즌을 앞두고 있다. 국민 복지 측면에서 본다면 경기장에서 직접 선수들을 응원하고 싶은 스포츠팬들의 숨통을 틔워주는 일이 가장 급선무이다. 산업적으로 볼 때는 관객동원 수입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관객들이 경기장에서 선수들을 응원하는 모습 자체다. 스포츠 이벤트에서 관객동원은 해당 리그의 인기를 높이고 중계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데 있어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인해 큰 타격을 입은 공연산업이 회복될 수 있을지도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부분이다. 공연산업은 미디어, 문화 산업을 통틀어 가장 현장감이 중요한 영역이다. K-POP의 인기가 지속되고 있지만 공연산업이 회복되지 않는다면 음악산업 자체가 정상화되기 어려울 것이다.


미디어 이용행태는 구조적인 영향과 개인적인 성향이 맞물려 형성되는 것이다. 일상으로 복귀하기까지 거의 2년의 기간 동안 우리 삶의 패턴은 상당 부분 변화했고, 미디어 이용도 마찬가지다. 아니 코로나 기간 동안 미디어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것만큼 가장 많은 변화가 있었던 부분이 미디어 이용행태일 수도 있다.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겠지만 오프라인에서의 자율성은 특정 분야 전반의 역학 변화에 영향을 미친다. 코로나로 인해 미디어 이용량이 늘어나면서 반사이익을 본 분야나 사업자도 있겠지만 이것은 일시적인 효과에 불과하다. 일상으로 복귀한 후 미디어 생태계가 어떠한 모습으로 변화해 나갈지에 대한 준비가 필요한 시기다.


다시 <듄>으로 돌아오자면 미디어 이용행태 변화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변수는 이용자에게 얼마만큼 큰 만족감을 줄 수 있는 창작물을 제작하고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느냐다. 드뇌 빌뢰브는 평단에서의 지지만큼 대중적인 호응을 얻지는 못한 감독 중 하나다. 코로나를 계기로 <듄>과 같이 극장에서 봐야만 하는 영화적 실험이 활발하게 이루어질지 아니면 OTT에서도 볼 수 있는 영화들의 제작이 늘어날지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일상으로의 복귀를 앞둔 시점에서 이용자에게 필요한 것은 미디어가 나에게 무엇인지 묻는 성찰적 태도이다. 콘텐츠 제작이 코로나 이전처럼 정상화되면 이용자들에게는 더욱 많은 선택지가 주어질 것이다. 내가 나의 선호를 잘 알지 못하고 미디어가 주는 유용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면 늘어난 선택지는 혜택이 아닌 부담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단계적 일상회복은 우리의 미디어 이용행태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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