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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창희 Nov 12. 2021

디즈니 플러스 국내 진출의 의미(1)

디즈니 플러스와 넷플릭스

네이버 국어사전에 따르면 정체성(正體性)이라는 단어는 “변하지 아니하는 존재의 본질을 깨닫는 성질. 또는 그 성질을 가진 독립적 존재”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정의에 따르면 정체성이라는 것은 집단이나 개인이 쉽게 바꾸기 어려운 자신만의 고유한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디지털 환경에서 기업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정체성을 그대로 유지하라는 것은 디지털화된 무한 경쟁체제에서 도태되라고 하는 말과 다르지 않다.      


정체성으로 글을 시작한 이유는 그만큼 정체성이라는 것이 바꾸기 어렵다는 것을 얘기하기 위해서다. 시대를 풍미했던 레거시 미디어들은 디지털화의 물결 속에서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기존의 방송 환경과 스트리밍 환경은 근본적으로 문법이 다르다. 콘텐츠 등 이미 많은 자산을 확보하고 있는 레거시 미디어 사업자들이 스트리밍 환경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이 바로 거기에 있다. 스트리밍 환경에 부합하는 맥락적 상상력을 발휘하기에는 레거시 미디어들은 청산해야 할 유산이 너무 많다.      


하지만 디즈니만큼은 DTCI(Direct-to-Consumer & International)를 표방한 이후 성공적인 행보를 이어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콘텐츠 기업인 디즈니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한계는 이용자에게 직접 콘텐츠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디즈니는 소비자와의 접점이 없다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OTT 시장에 뛰어들기로 결정한다. 2009년 훌루의 지분을 확보하면서 OTT 시장에 진입한 디즈니는 이후에도 OTT 관련해서 과감한 행보를 이어나간다. 2019년 런칭한 디즈니 플러스 출시는 DTCI 행보에 있어 이정표가 될만한 사건이다. 디즈니 플러스 런칭을 통해 디즈니는 글로벌 시장에서 자신의 플랫폼을 가지고 직접 소비자와 만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디즈니와 대척점에 있는 사업자라고 할 수 있다. 기술기업으로 출발한 넷플릭스는 ‘넷플릭스드(netflixed)’, ‘넷플릭스 효과(netflix effect)’ 등의 용어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혁신의 아이콘 중 하나였다. 2007년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한 넷플릭스는 2013년 오리지널을 제작하기 시작하면서 기술기업에서 콘텐츠를 제작하는 기업으로 거듭나게 된다. 이후 넷플릭스의 행보를 보면 단순히 가입자를 늘리기 위해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나 비평적으로나 의미 있는 작품들을 만들기 시작해 아카데미, 베니스와 같은 시상식에서 수상하는 작품을 제작하는 콘텐츠 기업으로 변모하게 된다.      


넷플릭스에게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을 포함한 IP 확보는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넷플릭스는 SVOD 시장의 최강자이긴 하지만 가입자가 지불하는 월정액 외에 다른 수익을 얻기 힘들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게임, 굿즈 등 수익을 다각화하고자 시도하고는 있으나 여전히 월정액 구독 모델에 대한 의존도가 절대적이다. 넷플릭스에게 가입자 이탈은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가입자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 신규 콘텐츠 수급이다. 넷플릭스가 IP를 가지고 있지 않은 콘텐츠에 대해서는 판권을 다시 계약해야 한다. 하지만 자신들이 IP를 가지고 있는 콘텐츠는 자유롭게 활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2016년 넷플릭스의 대한민국 진출은 넷플릭스가 자신들의 영토를 확장해 나가고 콘텐츠를 제작하는 사업자로서 입지를 굳혀 나가는 와중에 이루어진 일이다. 물론, 대한민국 외에도 여러 국가에 진출했지만 5년이 지난 현재의 시점에서 볼 때 넷플릭스의 대한민국 진출은 각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봐도 될 것 같다.      


<오징어 게임>은 K-콘텐츠가 넷플릭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보여줬다. 넷플릭스 국내 진출 이후 K-콘텐츠는 이미 넷플릭스에게 활용도가 매우 높은 자원이었다. 더욱이 넷플릭스가 스트리밍 진출 이후 콘텐츠를 수급받았던 경쟁자들이 OTT 시장으로 진출하면서 넷플릭스에게는 콘텐츠를 제한적으로 공급하기 시작하면서 한국의 제작사와 같은 새로운 협력 대상이 필요하게 되었다.        


디즈니 플러스 국내 진출의 의미에 관한 글을 쓰는데 넷플릭스 얘기가 길어진 이유는 넷플릭스가 국내에 진출하면서 일어난 변화만큼의 파급력이 디즈니 플러스로 인해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디즈니는 넷플릭스와는 완전히 다른 기업이고 2021년과 2016년은 다르다.       


산업적인 측면에서 가장 관심을 모으는 부분은 OTT 경쟁 구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여부와 국내 콘텐츠 제작시장에 디즈니 플러스 국내 진출이 미칠 파급력이다. 디즈니가 보유하고 있는 콘텐츠에 높은 충성도를 가지고 있는 팬들이 많다. 넷플릭스가 국내에 진출할 때와 달리 디즈니가 국내에 쉽게 연착륙할 수 있다고 전망할 수 있는 근거다. 또한, LG유플러스와 제휴했고, KT와도 모바일 제휴 계약을 체결했다. 디즈니 플러스 입장에서 보다 안정적인 서비스 제공이 가능한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2016년 넷플릭스가 국내에 진출했을 당시 많은 전문가가 성공 가능성에 대해 쉽게 답하지 못했던 것은 동영상 서비스에 대한 낮은 지불의사 때문이었다. 하지만 넷플릭스가 국내에서 상당수의 가입자를 확보한 것을 봤을 때 경쟁력 있는 OTT 서비스에 대한 지불의사는 확인된 셈이다. OTT 시장에서는 선발 사업자라고 할 수 있는 넷플릭스가 국내에서 거둔 성공이 디즈니 플러스의 성공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는 가늠자가 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두 플랫폼 사이의 경쟁이 어떻게 나타날 것인지 하는 것이다. 넓게 보면 디즈니 플러스 국내 진출이 국내 OTT 시장의 경쟁 구도에 어떠한 영향을 줄 것인지를 예의주시해서 살펴봐야 한다. 디즈니 플러스가 국내에서 일정 규모 이상의 가입자를 확보할 것이라는 데에는 별다른 이견이 존재하지 않을 것 같다. 넷플릭스에 가입한 이용자가 추가로 OTT 서비스에 지불하는 형태가 되어 보완재로 기능할 것인지 아니면 넷플릭스 해지로 이어지게 만들 것인지 예측하는 일은 상당히 어렵다. 복수의 OTT 플랫폼을 구독하는 이용자는 갈수록 늘어 나겠지만 신규 오리지널 콘텐츠 릴리즈 등의 영향으로 일시적으로 특정 플랫폼에서 이탈하는 양상은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디즈니 플러스 국내 진출이 국내 OTT 사업자에게 미칠 영향은 단순하게 예측하기 어렵다. 아직 OTT 시장은 성장하는 시장이기 때문에 글로벌 사업자와 국내 사업자가 동반 성장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디즈니 플러스 국내 진출이 플랫폼 시장의 경쟁 구도에 미칠 영향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콘텐츠 제작시장에 미칠 영향에 대한 관심이 크다. 넷플릭스 국내 진출이 콘텐츠 시장에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지면에서 논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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