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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창희 Nov 19. 2021

디즈니 플러스 국내 진출의 의미(2)

글로벌 OTT 플랫폼과 국내 콘텐츠 제작 생태계

콘텐츠 산업은 리스크가 큰 것이 특징이다. 디즈니가 마블 시리즈 각각에 연계성을 부여해 놓은 것도 일종의 위험 회피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전 시리즈를 본 이용자라면 새로운 마블 작품을 볼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쿠키 영상을 통해 다음 시리즈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 가능한 부분이다.      

대한민국은 미디어 산업 측면에서 볼 때 독특한 국가다. 우선 내수시장에서 국내 콘텐츠의 경쟁력이 높다. 다르게 얘기하면 이용자들의 국내 콘텐츠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는 것이다. 디즈니 플러스의 행보를 지켜봐야겠지만 글로벌 사업자들도 국내 콘텐츠를 확보하지 않으면 국내 시장에서 경쟁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넷플릭스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글로벌 OTT 플랫폼 사업자 입장에서 국내 콘텐츠에 대한 투자는 단순히 국내 가입자 확보를 위한 것만은 아니다. 대한민국의 콘텐츠는 글로벌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가 국내에 진출한 이후 국내 콘텐츠 제작 생태계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는 ‘넷플릭스’가 되어 버렸다. 앞의 문장은 현상에 대한 직접적인 서술이기도 하고 일종의 은유이기도 하다. 드라마의 경우 넷플릭스에 제작 투자를 받지 않으면 제작이 어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넷플릭스에 대한 제작비 의존도가 높은 상황이다. 넷플릭스가 국내에 진출한 이후 게임 체인저(Game Changer) 역할을 했다면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부분은 바로 콘텐츠 제작 시장이다.       


넷플릭스가 국내 콘텐츠 사업자와 계약하는 방식은 직접 제작 투자를 하던 이미 제작된 콘텐츠를 구매하든지 간에 제작비와 제작비 대비 10%의 수익을 보장해 주는 방식이다. 리스크가 큰 콘텐츠 제작시장에서 넷플릭스의 계약방식은 충분히 매력적일 수 있다. 넷플릭스 국내 진출 이후 나타난 두드러진 변화 중 하나는 콘텐츠 제작비의 상승이다. 물론, 콘텐츠 제작비 상승은 넷플릭스 국내 진출 이전에도 나타나던 경향성이었다. 하지만 넷플릭스 국내 진출 이후 제작비 상승 폭은 더욱 커졌다.     


눈높이가 높아진 국내 이용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라도 많은 제작비가 필요한 상황에서 콘텐츠 제작자들은 넷플릭스와 협업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넷플릭스로부터 제작비를 투자받고 싶어한다. 넷플릭스는 이윤을 보장해 줄 뿐 아니라 제작방식에도 관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콘텐츠 제작자 입장에서는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 본인이 원하는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굳이 <오징어 게임>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넷플릭스를 통해 상업적인 경쟁력뿐 아니라 비평적으로 높은 가치를 인정받을 만한 좋은 K-콘텐츠가 세상에 빚을 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현재 조명받고 있는 K-콘텐츠의 가치는 국내 콘텐츠 내수시장에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국내 방송미디어산업의 시장 규모를 고려할 때 너무 많은 제작비를 감당하지 않으면 이용자의 기대치를 충족시키기 어려운 환경이 되었다는 것이다. <승리호>의 사례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넷플릭스에게 제작 투자를 받지 않았더라도 제작비를 회수하기 위해 넷플릭스에게 IP를 넘겨주는 사례도 축적되고 있다.       

    

콘텐츠 제작자의 입장과 전체 미디어 생태계를 조망하는 입장은 다를 수밖에 없다. 넷플릭스와 같이 많은 제작비를 투자하는 글로벌 사업자들의 국내 진출은 콘텐츠 제작자 입장에서는 축복일 수 있지만 국내 미디어 생태계 입장에서는 마냥 환영할 일만은 아니다. 자칫 잘못하면 콘텐츠 제작시장이 ‘빛 좋은 개살구’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디즈니 플러스와 애플TV 플러스가 국내에 진출했다. 애플TV 플러스는 K 콘텐츠인 <닥터 브레인>을 선보였고, 디즈니 플러스도 국내 콘텐츠 사업자와 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글로벌 OTT 사업자 입장에서 대한민국은 단순히 영토 확장 대상이 아니라 콘텐츠를 확보하여 아시아 혹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콘텐츠를 수급해 주는 공급기지가 되어 가고 있는 모양새다.       


디즈니 플러스가 향후 국내 콘텐츠 사업자와 어떠한 방식으로 협업해 나갈지는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넷플릭스가 정착시키고 있는 계약방식을 전환할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인지 여부다. 아직까지 디즈니 플러스와 애플TV 플러스가 국내 콘텐츠 사업자들과 어떤 조건으로 협업하고 있는 지에 대해서는 알기 어려운 상황이다. 전체 생태계 차원에서 보자면 IP를 국내 사업자들이 확보하는 방향으로 계약방식의 전환이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즉, 글로벌 사업자들의 국내 진출이 국내 콘텐츠에 대한 수요를 높이고 있으므로, 이를 계기로 넷플릭스, 디즈니 플러스, 애플TV 플러스 등 글로벌 사업자와의 계약에 있어 국내 사업자의 주도권을 높이면서 IP를 확보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주목해 볼 만한 지점은 디즈니 플러스가 자사 서비스에서 국내 콘텐츠의 비중을 어느 정도로 배치하느냐다. 콘텐츠 제작에 뛰어든지 얼마 되지 않은 애플TV 플러스의 경우 상대적으로 국내 콘텐츠에 대한 의존도를 높여 나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디즈니는 전통적인 콘텐츠 산업의 강자로 디즈니, 픽사, 마블, 스타워즈, 내셔널지오그래픽 등에서 이미 확보하고 있는 다양한 콘텐츠가 있다. 하지만 일부 이용자들은 이미 기대보다 볼 것이 없다는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이 볼멘소리는 아직까지 볼만한 국내 콘텐츠가 확보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나오는 것일 수도 있다. 디즈니가 국내 콘텐츠 비중을 높여가고 넷플릭스처럼 글로벌 시장에서도 적극적으로 활용할지에 대해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2021년은 어쩌면 <오징어 게임>의 해로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국내 콘텐츠 제작시장이 주목받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징어 게임>의 성취는 우리에게 아주 만족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오징어 게임>의 성취는 대한민국의 성취라기 보다는 넷플릭스의 성취에 가까워 보이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디즈니라는 강자가 대한민국에 본격적으로 상륙했다. 글로벌 OTT가 가져올 콘텐츠 게임은 이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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