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유석. 『최소한의 선의』.
세상의 이치는 자명하지 않다. 대부분의 일에 대해 우리는 쉽게 납득하지 못한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이 선거에서 패배했을 때 선거에서 승리한 쪽의 정치인에게 투표했던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이해하지 못하면 다행인데 경우에 따라 혐오로 이어지기도 한다. 정치는 선택의 문제이니 선거의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개인의 주체적인 선택을 잘못된 것이라고 몰아갈 수는 없다. 하지만 사법적인 판단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정치가 최대한을 추구한다면, 사법은 최소한을 추구한다(172쪽).”
굳이 정치 얘기로 『최소한의 선의』에 대한 리뷰를 시작한 것은 법이 정치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많은 이들이 정치에게 바라는 것이 정치가 사법적인 정의를 바로 세워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유석이라면 뭔가 시원하게 법치주의에 대해 일갈해 주지 않을까 기대했던 독자라면 『최소한의 선의』를 읽고 조금은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문유석은 법치주의가 견지해야 하는 태도에 대해 상당히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조심스런운 저자의 태도 때문에 『최소한의 선의』에 대해 신뢰가 간다. “『개인주의자 선언』에서 한국 특유의 집단주의 문화에 짓눌린 개인들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이번에는 그런 개인들이 자유롭게 공존할 수 있는 사회가 되려면 어떤 가치들이 존중되어야 하는지를 법이라는 틀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한다(14-15쪽).”
“법이란 사람들 사이의 넘지 말아야 할 ‘최소한의 선(線)’인 동시에, 사람들이 서로에게 베풀어야 할 ‘최소한의 선(善)’이기도 하다. 이것이 문명 세계를 떠받들어온 기둥이다(9쪽).” 문유석이 법의 역할을 얘기하면서 문명 세계를 거론한 것은 문명 세계가 대전환기를 맞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를 연구하는 입장에서 이 대전환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미디어라는 점에 대해 얘기하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다. 문유석 역시 미디어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최소한의 선의』에서 적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관종’이다(124쪽).” 인간은 타인의 관심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관심을 갈구하고 타인에게 관심을 갖는 것 자체는 잘못된 일이 아니다. 왜곡된 방식으로 관심을 갈구하고 타인을 곡해하는 것이 문제다. 여기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바로 플랫폼이다. “거대 플랫폼 기업들은 국가권력에 대항하는 언론기관이기보다는 개별 국가권력 이상의 존재로 진화하고 있기에,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130쪽).” 플랫폼의 영향력이 커졌다는 것 자체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지만 플랫폼이 활성화되면서 인간이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무료로 제공되는 소셜 미디어에서 거래되는 상품은 우리 자신이다(106쪽).”소셜 미디어도 기업이고 기업의 최우선 목표는 이익 창출이다. 플랫폼 기업들이 의도적으로 갈등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이윤을 창출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으로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 양극화가 심회되고 미디어가 이를 직간접적으로 조장하는 경향이 나타날수록 법의 역할은 중요해진다.
문유석은 우리가 사회에서 공존해 나가기 위해서는 사고방식으로서의 법치주의가 필요하다고 얘기한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사회를 위해 꼭 필요한 건강한 사고방식, ‘법치주의’라는 사고방식에 대해(15쪽).” 문제는 세상에 명확한 선과 악으로 구분할 수 있는 일이 드물다는 것이다. “세상의 갈등 모두가 선과 악의 대결, 또는 정의와 적폐의 대결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의외로 그중 많은 경우는 선의와 선의의 부딪힘이기도 하다(187-188쪽).” 이 때문에 법은 악을 단죄하고 선의 편을 들어주기보다는 가치의 충돌을 조정하는 역할을 해준다고 문유석은 얘기한다. “법은 오히려 인간사회 속에서 부딪히는 수많은 가치들의 충돌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는 노력의 산물이다(248-249쪽).”
문유석이 강조하는 것은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이고, 법이 그러한 인간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에게 유별나고, 비루하고, 불온할 자유를 주지 않는 사회는 불행하고, 위험하다(108쪽).” 인공지능 시대 법에게 필요한 것은 정말로 인간다운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일지도 모른다. 다음의 문단을 인용하며 마친다. “법은 인간 위에 군림하는 신탁이 아니다. 법은 인간을 위한 도구다. 법은 인간사회의 평화와 질서 유지를 위해 기능해야 한다. 그런데 인공지능 로봇이 아닌 피와 살로 이루어진 우리 인간들은 온갖 인지적 편향과, 이성 이상으로 강력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 이걸 무시하면 법은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 우리의 법치주의 시스템은 인간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대중의 무지를 탓하기 전에 법조 엘리트들이 먼저 인간에 대한 스스로의 무지를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158-15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