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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창희 Oct 25. 2019

기술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앤드류 핀버그,『기술의 의삼한다: 기술에 대한 철학적 물음』. 김병윤 역

FAANG(Facebook, Amazon, Apple, Netflix, Google)과 MAGA(Microsoft, Amazon, Google, Apple)와 같은 신조어들을 보면 현재 세계를 주도하는 기업들이 어떤 사업자들인지 알 수 있다. 이 기업들이 어떤 형태의 기업인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논란이 제기될 수 있겠지만 이 기업들을 관통하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이 기업들이 기술적 혁신을 기반으로 성장해 왔다는 것이다.      


제4차 산업혁명, 데이터 기반 사회와 같은 용어들은 현재의 사회에서 기술이 차지하는 위상을 보여준다. 기술이 사회의 진보를 견인한다는 믿음은 이제 현대사회에서 논란의 여지가 없는 몇 안 되는 명제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기술의 발전이 사회의 진보를 이끄는 것일까 사회의 필요가 기술의 발전과 혁신을 추동하는 것일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같은 이 질문에는 정답이 존재한다기보다는 역사적, 과학적, 사회적, 정치적 맥락에 따라 복합적인 상호작용을 거듭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일 것이다.       


앤드류 핀버그(Andrew Feenberg)는 “기술이 모든 것을 기능이나 원재료로 환원시킨다고 생각하는(23쪽)” 본질주의에도 하이데거, 하버마스, 아도로느와 호르크하이머처럼 기술을 중대한 위협으로 보고 그에 대한 영향력을 최소화시켜야 한다는 회의론적 입장에도 모두 반대한다. 핀버그는 민주적인 과정을 거쳐 기술을 사회의 필요에 맞게 재설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핀버그의 이와 같은 주장의 토대에는 기술에 대한 구성주의적 시각이 존재한다. “구성주의는 사회가 기술진보의 속도에만 영향을 끼친다는 표준적인 견해와 단절해서 기술 자체의 본질을 좌우한다고 주장한다(54쪽).”     


핀버그는 근대의 형성 과정에서 기술의 합리성, 전문성, 중립성을 옹호하는 기술관료주의가 기술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고 비판한다. “기술관료주의는 사회를 기술영역의 특징이라고 여겨지는 ‘중립적인’ 도구적 합리성의 총체로 일반화하려고 한다(147쪽).” 기술은 관료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기술을 이용하는 모두가 성찰해야 하는 대상이고 그 기저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세계가 있다. “사회세계는 단순한 외부환경이 아니다. 사회세계는 의미를 지닌 기술을 관통하고 있다(355쪽).”     


기술을 기반으로 한 서비스들은 일상에 깊숙이 침투해 있다. 그 서비스들이 우리의 필요 때문에 보편화 된 것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우리가 기술을 기반으로 한 서비스들에 막대한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우리에게 쏟아지는 정보들과 콘텐츠들이 과연 우리의 니즈를 반영한 것인지도 우리는 알 수 없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핀버그의 다음과 같은 지적은 귀 기울여 들을 만하다.    

     

얼마나 기술을 역사의 민주화운동으로 만드는가에 따라, 우리는 본질주의적
비판에 의해 투사된 미래와 매우 다른 미래에서 살아가는 희망을 품을 수 있다.
이러한 미래에서 기술은 우리가 수용과 거부라는 두 가지 선택지에서
골라야 하는 일종의 운명이
아니라 정치적·사회적 창조성에 대한 도전이 된다(371-372쪽).        


이 도전에 기술을 이용하는 이용자들은 깨어 있을 필요가 있다. 핀버그가 얘기하는 것처럼 기술은 진공 상태에서 중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깊숙하게 교섭하는 영역이기 때문이고 그 영향력은 갈수록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기술에 대한 구성주의적 관점은 여전히 유효하고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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