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공정함과 낭만적인 관대함

임경선 『태도에 관하여: 나를 살아가게 하는 가치들』. 서울: 한겨레출판

by 노창희

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무척이나 책을 편협하게 읽는 편이다. 일주일에 소설 한권, 인문이나 사회과학책 한권 그리고 시집 한권을 이주에 걸쳐 읽는다(읽으려고 노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고 싶은 책과 읽어야 하는 책, 집에 쌓아두고 읽지 못한 책들은 여전히 넘쳐 난다. 이 얘기로 글을 연 이유는 내 독서 취향을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이런 방식으로 책을 읽다 보면 ‘에세이’라는 것을 읽을 수가 없다. 이 경우 내가 읽는 에세이는 에세이 전문 작가의 책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들이 내놓은 에세이들이다. 물론, 이런 질문은 남는다. 김훈은 에세이스트인가 소설가인가? 가끔 하루키는 소설보다 에세이가 더 좋다고 느껴지는데 내가 이상한 것인가? 와 같은 질문. 우문이고 이 우문에 대한 현답도 있을 것 같지 않다.


예외가 있다. 바로 임경선의 에세이이다. 드러내놓고 팬심을 밝히는 글에서 다소 민망하지만 온전히 다 읽은 에세이는 『태도에 관하여』밖에 없다. 『어떤 날 그녀들이』, 『곁에 남아 있는 사람』과 같은 소설들도 재미있게 읽었다. 책 선물하기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책 선물만큼 어려운 일도 없다. 책을 평소에 많이 읽는 사람에게는 이미 그 책을 가지고 있을까봐(그렇다고 선물하기 전에 책을 가지고 있냐고 물어보는 것도 다소 민망한 일이다), 책을 잘 읽지 않은 분이라면 재활용품만 하나 늘어날까 걱정되기 때문이다(이 경우 가정에 분란을 초래할 수도 있으니 민감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나에게 이런 걱정을 가장 많이 해소해 준 책이 『태도에 관하여』이다. 이 책은 일단 읽기 시작하면 독서 경험, 책에 대한 취향과 무관하게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태도에 관하여』를 손에 잡게 된 계기는 <임경선의 개인주의 인생상담>이라는 팟캐스트를 듣고서이다. 질문과 무관하게 임경선의 태도는 무척 공감이 가고 때로는 위로가 되었다. 한국사회에서 개인주의로 살아가기는 의외로 어렵다. 특히, ‘결혼’이라는 제도 내부로 들어오면 개인주의가 문제가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팟캐스트의 이름을 빌리지면 나는 임경선을 ‘합리적 개인주의자’라고 생각한다. 나같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지 못한 채 가슴에 담아두는 사람에게는 시원한 임경선의 발언과 문장들이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하기도 한다.

『태도에 관하여』로 돌아오면 이 책은 일단 제목 자체가 훌륭하다. 삶을 어떠한 태도로 대해야 하는지 생각하기 어려운 이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태도를 설정하면 상황이 바뀌지는 않더라도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나의 태도에 견주어 그 문제를 마주하면 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대하는 타인의 태도가 잘못되었거나 나와는 다르기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가족과의 갈등, 육아 문제, 가사 문제 등으로 발생하는 문제는 상당 부분 나와 너의 다른 태도에서 발생한다. 내가 틀린 것이 아니다. 나와 너는 다른 것이다.


『태도에 관하여』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에세이는, 아니 내가 여지껏 읽은 에세이 중 가장 좋아하는 에세이 중 하나는 「현실 생활에서의 평등」이다. 이 에세이 역시 제목만으로 훌륭하다. 평등만큼 중요하면서도 추상적이고 공허한 단어가 없다. 나는 너에게 평등하게 대했어. 라는 말은 나의 편협한 인식에서 보자면 너에게 평등하게 대했어라는 말로 바꾸어 말하는 것이 보다 정확하다. 「현실 생활에서의 평등」에서 작가로서 임경선이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장점 중 하나는 자신의 상황에 대해 솔직하게 표현한다는 것이다.


가사 문제가 왜 어려울까?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적으로 규정해야 하기 때문이다(82쪽).”가사 문제가 어려운 이유는 가사는 기본적으로 여성이 담당해야 하는 것이므로 남성이 가사 일을 하는 경우 그것은 주체적으로 하는 행위가 아닌 너를 도와주는 행위가 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네가 하라는 대로 할게(83쪽).”라는 표현은 애시당초 자신이 적극적으로 나설 생각이 없는 주체가 할 수 있는 표현이다. 가사 문제 뿐 아니라 회사의 업무 관계에서도 책임의 소재를 모호하게 만들어 놓고 내가 너를 돕는다는 뉘앙스를 주는 경우만큼 황당하고 화가 나는 경우도 없다. 임경선은 이를 “협조적인 비관련자의 입장(83쪽)”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면 우리는 이런 상황을 두 손 놓고 포기해야 하는 것인가?


임경선은 그렇게 얘기하지 않는다. 상황을 바꾸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그럴 때 필요한 태도는 무엇일까? 나의 눈높이에 부합하는 ‘공정함’이라는 기준을 설정해야 한다. 여기에 어긋나도 그냥 내가 한다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이렇게 체념할 경우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항상 나의 공정함을 상대방에게 관철 시켜야만 할까? 그럴 수는 없다. 가끔은 관대하게 너의 처지를 인정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오랫동안 함께할 수 있다. 내가『태도에 관하여』에서 가장 좋아하는 다음의 문장은 공정함과 관대함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인간적인 공정함과 낭만적인 관대함을 최선을 다해 양립해나가고 싶다. 우리는 그렇게 조금씩 더 나아질 것이다(90-91쪽).”


오늘 다시 읽은 「현실 생활에서의 평등」은 2018년에 나온 개정판에 실려 있는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던 버전은 2015년 판이었다. 2018년에 개정판이 나왔을 때 어떤 부분이 바뀌었는지 확인하지 않고 아무런 고민 없이 바로 주문했던 기억이 난다. 2년이나 3년 쯤 후에 다시 개정판이 나온다고 해도 나는 아무런 주저 없이 『태도에 관하여』 개정판을 주문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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