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라 에프런『철들면 버려야 할 판타지에 대하여』(김용언 역)
나이가 들면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을 것이다.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다가 아니라 않을 것이라고 적은 이유는 내가 아직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다고 할 만큼 나이가 들지는 않았기 때문이다(물론 나 또한 10년 전만큼 기억력이 좋지는 않다). “나는 수년 동안 뭔가를 잊어왔다. 요즘 나는 뭔가 새로운 방식으로 잊어버리고 있다(「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 12쪽).” 문제는 그 수많은 망각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기억들은 남는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그 치명적인 기억들은 대부분 자신을 괴롭힌 일들이라는 것이다. 3번의 이혼을 경험한 노라 에프런에게는 이혼이 그런 경험일 것이다. “기나긴 삶을 통틀어 나에 대한 가장 중요한 사항은, 내가 이혼했다는 점이다(「이혼」, 164쪽).”
노라 에프런은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When Harry Met Sally)>의 각본을 쓰고,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Sleepless in Seattle)>, <유브 갓 메일(You’ve Got Mail)>의 각본을 쓰고 감독한 로맨틱 코미디의 거장이다.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는 어떤 장르인가? 사랑에 대한 판타지를 유지한 채 사랑의 결실을 맺기 이전까지는 유머의 힘으로 버티는 장르 아닌가? 이러한 편견은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를 다시 보면 여지없이 깨진다. 좋은 로맨틱 코미디는 사랑을 이상화하지 않는다. 유머는 정황을 예리하게 꿰뚫고 있는 작가의 통찰에서 나온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를 다시 보고(다시 봤다고 가정하고 있는데, 다시 봤는지는 확실치 않다. 최근에 다시 본 이 영화는 처음 본 영화인 것만 같다.) 읽은『철들면 버려야 할 판타지에 대하여』에서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각본가 노라 에프런을 생생히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메뉴를 까다롭게 고르는 샐리의 모습에 노라 에프런의 실제 모습이 투영되어 있음을 이 책을 읽은 독자는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인생을 대하는 노라 에프런의 태도는 그야말로 삐딱하다. 이 삐딱함을 비난하기 어려운 이유는 자기 자신을 대하는 태도 역시 삐딱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저널리즘에 대한 러브 스토리」에는 여성 저널리스트로서 노라 에프런이 어떻게 성장해 왔는지 잘 묘사되어 있다. 여기에 저널리즘에 대한 이상화 따위는 없다. “나는 지금 ‘진실’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사람들의 말은 늘 잘못 인용된다. 언론계는 음모론으로 가득 차있다(의도치 않은 실수로 정보를 잘못 사용하는 것도 음모에 포함된다). 정서적으로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기계적 객관주의와 냉소주의는 기자를 사건에서 지나치게 멀어지게 만들 뿐이다(「저널리즘에 대한 러브 스토리」, 48쪽).”
저널리스트에서 영화인으로 변모한 노라 에프런은 당연히 성공한 영화인으로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지만 그런 노라 에프런이었다고 해서 실패한 경험이 없을 리는 없다. 실패는 성공의 자양분인가. 에프런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한편으로 실패의 장점을 설파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실패를 통한 성공에 대해, 실패의 힘에 대해 책을 쓴다. 그들은 실패가 성장의 경험이었고, 실패로부터 뭔가 배울 수 있다고 한다. 그 말이 맞길 바란다. 내가 보기엔 “실패로부터 배울 수 있는 가장 큰 교훈은, 앞으로 언제든 또 다른 실패를 겪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사실이다(「실패작」, 151-152쪽).””
그렇다면 시간은 실패의 고통과 실연의 고통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 줄 것인가? 다음의 문장을 읽으면 그것 역시 영락없는 판단미스 임을 깨닫게 된다. “사람들은 언제나 시간이 약이며 고통을 잊게 될 거라고 말한다. 이런 말은 출산할 때 듣는 상투어이기도 하다. 엄마는 아이 낳을 때의 고통을 잊어버린다고들 한다. 나는 이 말에 동의할 수 없다. 나는 그 고통을 기억한다. 진짜 잊어버리는 건 사랑이다(「이혼」, 172쪽).”
그럼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이 모든 악조건 속에서도 분명한 사실은 인생은 계속된다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인생도 계속된다. 차기작을 만들 수 있는 행운을 잡는다(「실패작」, 151쪽).” 중요한 건 인생은 계속된다는 점이다. 실패가 주는 교훈은 또 다른 실패를 겪을 수 있다는 것이지만 성공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나는 살아 남았다. 나의 신념은 ‘털고 일어나자’이다. 나는 내 경험을 쾌활한 이야기에 녹여내어 소설을 썼다. 그 소설로 번 돈으로 집도 샀다(「이혼」, 172쪽).” 내가 살아온 날들에 대해 팔짱 끼며 냉소하지만 그 지나온 인생 자체가 그저 나라고 인정할 수 있다면? 아마도 판타지 없이도 인생을 지속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