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현 <접속>
대한민국이 가장 역동적인 에너지로 끓어 넘치던 시절이 90년대였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경제는 계속해서 성장할 것 같았고, 형식적 민주화를 통해 진정한 민주주의가 도래한 것처럼 보였다. 지금까지도 폭발적인 팬덤을 유지하고 있는 90년대식 대중문화가 꽃피었다. 지속적인 성장은 거대해진 도시에(특히, 서울이라는 도시를) 우울한 정조를 드리우기 시작했다. 도시인의 우울과 고독 그리고 그를 둘러싼 사랑은 손쉽게 영화, 음악, 드라마의 주제가 되었다. 물론, 문학도 여기에서 예외는 아니었으며, 그때부터 지금까지도 많은 한국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의 분위기도 이와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김영하, 윤대녕, 은희경의 초기작들 역시 도시적 우울이라는 것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성장으로 거대해진 도시의 이면에는 개인의 고독과 단절이 도사리고 있었다.
비대해진 도시에서 원자화된 개인들은 새로운 소통 창구를 갖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PC 통신이다. 옛 연인의 불행한 죽음으로 자신을 떠난 사람을 잊지 못하는 라디오 PD 동현(한석규 분)은 PC 통신에서 여인2라는 아이디를 쓰는 수현(전도연 분)이 자신을 떠난 연인을 알고 있다는 뉘앙스를 비치자 연락처를 묻는다. 수현은 선의로 동현과 대화하지만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해 버리고 만다. 수현은 동현의 옛 연인과 일면식도 없던 사이였던 것. 동현은 분노하며 채팅방에서 나가 버린다. 한편 수현 역시 불행한 사랑 때문에 괴로운 처지이긴 마찬가지다. 동거하고 있는 친구 희진(강민영 분)의 연인 기철(김태우 분)을 짝사랑하고 있었던 것. 동현과 수현의 불행한 사랑은 해피엔드(동현의 통신ID)와 여인2의 통신을 이어지게 만든다.
최근에 다시 본 <접속>에서 등장인물의 판단과 행위는 하나같이 납득하기 어렵거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같이 일하는 작가 은희(추상미 분)에 대한 동현의 태도는 비겁하고 우유부단해 보인다. 이는 수현에게 이성적 애정이 있는 듯 없는 듯 대하는 기철도 마찬가지다. 동현이 극 중에서 얘기한 것처럼 친구의 애인을 뺏을 용기도 없으면 기철에 대한 마음을 정리하지 못하는 수현의 태도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접속>을 봤을 때는 전혀 그렇지 않았는데, 지금은 왜 그럴까? 나도 나이를 먹었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동현과 수현은 여전히 불행한 채로 남는다. 그리고 만나기로 한다.
어떤 작품은 그 보편성 때문에 고전이 된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때>는 남녀 관계에 담겨 있는 변하지 않는 그 무엇을 잘 포착해 냈기 때문에 로맨틱 코미디의 고전으로 꼽힌다. 어떤 영화는 그 시대만이 내뿜는 시대적 공기를 잘 담아 내서 고전이 된다. <접속>이 고전인지 혹은 고전이 될 수 있을지 판단하는 것은 나의 능력을 넘어서는 일이지만 전자보다는 후자에 가깝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90년대말 익명성과 가시성을 오가며 사람들을 이어주던 PC 통신은 이제 연기하는 자아가 자신을 드러내며, 언제 어디서나 타인과 우리를 연결해 주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으로 대체되었다. 수현이 찾아 헤매던 벨벳 언더그라운드(The Velvet Underground)의 Pale Bule Eyes는 유튜브로 손쉽게 들을 수 있다. 기술적 환경만큼이나 경제적, 사회적 환경도 크게 바뀌었다. 접속이 개봉했던 1997년 9월에서 불과 2달 뒤에 외환위기가 터졌다. 대한민국은 외환위기에 비교적 잘 대응했고, IT 강국이 되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은 단기간에 위기를 극복해 낸 대한민국의 위상을 상징적으로 대변했다. 하지만 그 후 여러 가지 굴곡을 거친 대한민국은 헬조선이라는 경멸적인 단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살기 힘든 나라가 되었다. 그래서 90년대를 살았던 우리는 각자가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90년대를 그리워한다.
<접속>에서는 동현과 수현이 서로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한 채 몇 차례 같은 공간에 있거나 스쳐 지나간다. 이 설정은 다분히 작위적이지만 익명으로 흩어져 있는 우리가 사실은 이어져 있다는 장윤현 감독의 선의에서 탄생한 장면들일 것이다. <접속> 개봉 후 2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나서 보니 끝까지 고민하던 동현이 수현 앞에 나타나는 마지막 장면은 장윤현 감독이 90년대에 바치는 일종의 헌사처럼 보인다. 만나야 할 사람은 만날 수 있고 그 배후에는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발전이 놓여 있다. <접속>의 마지막 장면이 내게는 90년대 한국적 낭만과 우울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마지막 장면처럼 보인다. 20년이 넘게 지나버린 시점에서 지금의 현실과 무관하게 그 마지막 장면에 담겨 있는 선의를 긍정해 주고 싶다.
배경 이미지 출처: Ciaran O'Brien https://unsplash.com/s/photos/seo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