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를 본다는 행위의 의미에 대하여
얼마 전 「빈지뷰잉과 ‘조커’, 영상 소비의 의미 변화」라는 글을 『아주경제』에 기고한 바 있다. 도입부에서 방송을 시청한다는 행위에 대해 전통적으로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했으며 방송 시청이 ‘카우치 포테이토(couch potato)’와 ‘바보상자’라는 경멸적인 표현으로 조롱받아 왔음을 지적한 바 있다(물론, 이 글은 이 인식에 대한 안티테제에 가까운 글이다). 만약, 여전히 방송을 시청한다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가장 조롱받아 마땅한 행위가 있다. 바로 야구를 보는 것이다.
우리나라 시각으로 10월 31일 워싱턴이 휴스턴을 이기고 월드시리즈 우승을 하면서 2019년의 야구는 모두 끝이 났다(끝난 줄 알았는데, 11월 6일부터 프리미어 12다). 이제 한 시즌을 마치고 겨울이 왔으니, 야구팬들은 야구 시청으로부터 기나긴 동면에 들어가야 한다. 그럼 왜 야구를 시청한다는 행위는 조롱당해야 하는가? KBO는 한팀이 일 년간 장장 144경기를 소화해야 하고 MLB는 한팀이 한 해당 소화해야 하는 경기가 무려 162경기다. 평균 경기 시간을 3시간으로 잡는다면 프로야구를 보는 행위만큼 소모적인 행위도 없다. 오죽하면 유명한 야구팬으로 알려진 하루키가 자신의 약점을 ‘야구’라고 했겠는가(하루키, 마쓰이에 마사시, 권남희, 유은정, 「하루키, 하루키를 말하다」, 『문학동네』, 2010년 여름호).
미디어 특히, 여전히 방송에 가장 관심이 많은 연구자로서 스포츠는 거의 마지막 남은 실시간성을 생명으로 하는 장르가 되었다는 점에서 특수하다. 우리나라는 야구팬들이 야구를 시청 혹은 중독되기에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있다. IT 강국의 위상에 걸맞게 언제 어디서든 모바일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고, 미국에서도 쉽게 보기 어려운 MLB 경기도 국내 포털을 통해 접근할 수 있다(물론, LA 다저스처럼 우리나라 선수가 뛰고 있는 경기에 국한되어 있기는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하루에 6시간 이상을 야구만 보면서 보낼 수 있다(흥미로운 MLB 경기가 한 경기가 아니라 여러 경기를 다른 시간에 중계한다면 문제는 정말 심각해진다).
나는 오랫동안 타이거즈(해태 타이거즈와 기아 타이거즈) 팬이었고 암흑기도 있었으며, 내일부터 다시는 야구 안본다는 거짓말도 여러 번 했다(이제는 민망해서 하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는 야구를 보지 않는다는 다른 야구팬의 말도 믿지 않는다. 진짜 보지 않으려면 그런 말을 할 정도의 관심도 사라져야 한다). 나는 경기장에는 잘 가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TV로 보는 것보다 경기에 몰입하기가 어렵고, 안 좋은 기억도 많다(직관한 경기에서 기분 좋은 기억이 거의 없다). 시즌 중에는 집에서 맥주 한잔하며 야구 보는 것만큼의 여가는 없다. 반면, 불행히도 시즌 중에는 회식을 하건 야근을 하건 온전히 집중하기 쉽지 않다. 언제, 어디서나 야구를 볼 수 있고, 경기 결과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미디어 환경 때문에.
군대에 가기 전에 가장 많이 듣는 말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물론, 여전히 이 말처럼 기만적인 말도 드물다고 생각한다)를 빌려 말하자면 “끊을 수 없으면 즐겨야” 한다. 나와 가장 많은 야구 대화를 나누는 사람 중 한 명이 얘기한 것처럼 시즌 중에 한 팀을 응원하는 행위는 여가생활인지 투병생활인지 구분하기 힘들 만큼 정신적으로 몰입하게 되는 행위이기도 하다. 아무리 최강팀이라도 시즌 중에 팬을 뒷목 잡게 하는 경기는 반드시 나오게 되어 있다(내셔널리그 승률 전체 1위팀 LA다저스의 팬들은 디비전 시리즈에서 최악의 경험을 했고, 전체 승률 1위이자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휴스턴 애스트로스도 월드시리즈에서 뼈아픈 패배를 당했다).
그럼 우리는 야구를 왜 보는가? 야구만큼 시간 소모적인 스포츠 시청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시간을 야구와 함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켜켜이 쌓여온 야구 시청의 경험은 개인의 한 시절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마리아노 리베라 은퇴경기를 스마트폰으로 보다가 지하철에서 펑펑 울고 나서는 무척 부끄럽다고 느낀 적이 있었다. 김형준 해설위원이 자신을 포함한 메이저리그 해설위원들이 모두 펑펑 울었다는 얘기를 듣고서는 부끄러운 마음이 조금은 진정 되었다. 야구는 지나온 세월이다. 그 세월이 지나고 나서 야구 시청 경험은 순정한 팬심과 애호의 감정에서 출발한 것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추억으로만 소환할 수 있다.
사회적 적대와 혐오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콘텐츠가 넘쳐 나지만 개인의 정치적 성향과 이해관계를 벗어나 건강하게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대상은 여전히 찾기 어렵다. 야구팬들은 각자의 팀을 응원하며 티격태격하지만 결국 야구로 뭉치게 되어 있다. 레전드가 은퇴하면 응원하는 팀을 초월하여 존경의 마음을 표한다. 때로는 과열되고 물리적인 충동으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야구팬들은 결국 ‘야구’라는 이름으로 연대한다.
시즌이 시작되면 야구팬들의 생활 리듬에 야구가 틈입하고 때로는 야구가 생활 리듬을 조율한다. 온전히 망가진 시즌이라도 아무런 의미를 찾지 못했던 시즌은 드물었던 거 같다. 아무런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고 온전히 집중할 수 있던 야구를 보는 시간은 그런 측면에서 ‘제의(祭儀)’적인 관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물리적으로 같이 보지 않더라도 함께 야구를 보며 갑론을박했던 사람들도 빼놓을 수 없다. 내년 봄에도 야구는 다시 시작할 것이고, 이변이 없는 한 IT 강국 대한민국에서 야구를 시청할 수 있는 조건은 여전히 우호적일 것이다. 야구가 끝이 나면 겨울이 오고 나는 겨울이 빨리 가기를 기다린다. 플레이 볼!!!
배경 이미지 출처: Matthew T Rader https://unsplash.com/photos/yXdJ8QVZl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