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로 물리적 경험에 대해 사유하기

2025년 11월 10일 – 2025년 11월 16일 주간

by 노창희

평일에 달리는 공간을 바꾸었다. 약수역에서 청구역 사이의 구간인데 대로와 골목을 잘 활용하면 나름대로 트랙처럼 뛸 수 있다. 새벽에도 사람들의 온기를 느낄 수 있기도 하고 워밍업과 쿨다운에 각각 십 분 정도씩 소요되는 거리라 시간 효율상으로도 맞춤한 느낌이다. 동절기에 내가 뛰는 새벽 4시에서 5시 사이는 적막하다. 고요 속에서 달리는 느낌은 때로 충만하지만 추위에는 가끔 버겁다. 새로 발견한 코스는 경미하게 오르막과 내리막도 있어 훈련용으로도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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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도 대체로 목표를 달성한 달리기였다. 마일리지 상으로 80km를 채웠고, 10km 최고 페이스(5분 13초)도 기록했다. 다만, 계속되는 고민은 일요일에 뛰기로 목표했던 LSD다. 오늘은 주간 마일리지 80km를 채우는 차원에서 13km를 뛰었다. 애초 20km를 목표로 했으나 LSD는 동기부여가 잘되지 않는 느낌이다. 다음 주부터는 애초에 LSD의 목표 거리를 15km 정도로 토요일에 LSD를 소화하고, 일요일에 5분대 페이스 20km에 근접한 달리기를 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봐야겠다.


크리스틴 로젠의 <경험의 멸종>을 계속 읽고 있다. 대체로 디지털 기술이 현실의 경험을 대체하면서 생기는 부작용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책이다. 도입부를 읽었을 때의 느낌이 맞았다. 대체로 동의할 수 있는 주장과 문장이 많다. 나는 개인적으로 디지털 기술의 역효과를 다루는 책들을 좋아하는 편인데, 그 책들의 메시지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나는 기술의 진화를 받아들이고 가급적 그 기술을 잘 활용하는 편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겸양의 표현이 아니라 내가 기술적 진화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편이어서 더 그렇게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최근 러닝 열풍을 견인하고 있는 두 축은 스마트 워치와 SNS다. 이는 그 누구도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SNS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강력한 독립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SNS의 부작용에 대해서는 깊이 공감하지만 나 역시도 언젠가부터 SNS의 폭넓은 자장 속에서 살아가고 있고, 자발적으로 빠져나올 생각은 없다. <경험의 멸종>을 비롯한 많은 책과 연구들이 피력하는 바와 같이 SNS는 타인과 나의 삶을 비교하게 만들어 삶에 대한 만족도를 떨어뜨릴 수 있고, 이 부분에 공감한다. 하지만 오프라인상에서의 교감이 줄 수 없는 정서와 효능을 SNS가 제공하는 것도 사실이다. 가령, 내가 오늘 어느 정도의 거리를 얼마만큼의 페이스로 뛰었다라고 하는 정보를 오프라인상으로 공유하기는 애매하다.


스마트 워치를 통해 러닝 기록을 확인한 이후의 가장 주요한 감상은 스마트 워치 덕분에 내 몸을 연구 대상으로 관조할 수 있게 된 듯한 느낌이다. 스마트 워치로 러닝 기록을 확인하는 이용자는 어디를 뛰더라도 내가 얼마의 거리를 어떻게 뛰었는지 알 수 있다. “과거의 기술이 인간의 감각을 증폭시키는 것이었다면 오늘날의 기술은 자신의 감각을 불신하고 대신 기술에 의존하도록 우리를 훈련시킨다(17쪽).” 스마트 워치에 한정에서도 <경험의 멸종>의 위와 같은 언급은 틀리지 않는다. 거리와 페이스까지는 객관적이라도 하더라도 맥박을 통해 힘듦의 수준을 가늠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달리기와 관련해서 국내에서 가장 저명한 인플루언서 중 한 명이라고 할 수 있는 정세희 교수는 스마트 워치가 제공하는 데이터에 집착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또한, 달리기와 관련된 많은 숙련된 전문가들도 존2, 존3보다 중요한 것은 달리면서 느끼는 체감이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스마트 워치가 내가 어떻게 뛰는지 잘 알 수 있도록 (그것도 아주 많이) 도움을 준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며, 이를 SNS에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 좀 더 열심히 달릴 수 있는 유인을 제공해 준다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스마트 워치가 제공해 주는 나에 관한 정보가 나의 달리기에 대해 사유할 수 있게 해 준다고 말해도 될까? 이를 좀 더 거창하게 얘기하면 ‘디지털로 물리적 경험에 대해 사유하기’라고 해보면 어떨지. 스마트 워치가 제공해 주는 기록은 나의 한계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자신의 한계까지 SNS에 공유하는 이는 많지 않겠지만 적어도 자신의 인식에는 한계가 각인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스마트 워치를 어떻게 활용하느냐다. 다른 디지털 기술도 마찬가지다. “경험의 소멸은 불가피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선택이다(19쪽).” 크리스틴 로젠이 의도한 바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 문장을 해석해 보면 디지털 기술을 긍정적으로 활용하면 경험에 대해 좀 더 잘 사유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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